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가수 나훈아가 작심 발언을 내놨다. 그는 추석 특집 KBS 실황 공연 도중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 없다”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僞政者)가 나올 수 없다”는 멘트를 날렸다. “KBS는 공영방송이지요? 두고 보세요. KBS가 거듭날 겁니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을 놓고 야당이 먼저 반색이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잊고 있었던 국민의 자존심을 일깨웠다”고 무릎을 쳤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정치인으로서)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했다. 반면 여권은 “정치적으로 ‘오버’해서 해석하지 말라”고 야당에 퉁을 놓는다.

우리 공무원이 NLL 북방에서 북한군의 10여 발 총탄에 사살되고 불태워진 천인공노할 사태가 발생했다. 비극이 청와대에 보고된 시각은 밤 10시인데,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식보고한 시각은 다음날 오전 8시 반이란다. 안보 부처 장관·참모들은 새벽 1시에 긴급회의를 열었고, 문 대통령의 유엔연설도 나왔다는데 참 해괴한 일이다.

사건 직후 잠시 분기탱천하던 집권당은 북한 전통문에 담긴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에 일제히 입을 닫았다. 청와대는 숨겨왔던 김정은의 친서를 강력소화기로 써먹었다. 이 나라 최고 궤변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김정은을 ‘계몽 군주’라고 칭송했다.

예상대로, 서울동부지검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복무시절 황제 휴가 논란에 대해서 면죄부를 선사했다. 예측을 벗어난 것은 추미애 장관의 적반하장(賊反荷杖) 행태다. 동부지검은 수사결과와 함께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카투사 대위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카톡 내용을 함께 까발렸다.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는 추 장관의 주장을 한 방에 뒤집은 셈이다.

추 장관은 “전화번호는 줬지만 지시는 안 했다”는 기괴한 논리를 들고나와 비판자들에 대한 가공할 보복 소송전을 을러댔다. 시중에 “술은 마셨지만, 음주는 안 했다”는 식의 패러디가 폭포를 이룬다.

아무래도 집권 세력은 당분간 ‘추미애 사석 놀이’를 더 끌어가고자 하는 게 틀림없다. 문재인 정권은 강력한 팬덤정치의 마력을 중심으로 권력 프로그램을 힘차게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야당이 맥없이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논리적 사유가 거세된 세상에서 야당은 권력의 바람 장난에 영락없이 놀아나는, 춤추는 ‘허깨비 풍선’이다.

정권을 비판하는 여론은 허공에 겉돌 따름,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고도의 정략 아래 뿌려지는 사석 밑밥에 눈이 어두워 도무지 ‘대안 정당’의 위상도, 지지여론을 일궈낼 적합한 수단도 구축하지 못하는 제1야당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이 깊다. 갈곳 잃은 민심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길을 묻고 있는데 마냥 허깨비춤만 추고 있으니 대체 어쩌자는 건가. 가수 나훈아의 상식발언 한마디에 박수나 치는 초라한 야당 수준으로 대체 뭘 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