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계서원 담장을 따라 소나무 숲이 둘러져 있다.

중학생이 된 그해 여름, 나는 묵계에 갔다. 남후면 개곡 예배당에서 안동 시내로 와서 버스에서 내린 뒤 다시 한참을 걸어서 반대 방향에 있는 길안면 묵계 교회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한나절을 흔들리고 나서야 도착했다. 작은 교회 두 곳이 연합해서 중고등부 수련회를 이곳에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2박 3일이지만 오고 가는 시간이 대부분인 일정이었다. 그 교회에서 내려다보이는 앞들에는 강이라고 하기엔 뭣하고 내라고 하기엔 폭이 넓은 물이 흘렀다. 돌다리도 떠내려갔는지 바지를 둥둥 걷고 신발과 성경을 들고 건너가서 만휴정 계곡 너럭바위에 올라서 예배를 드린 기억도 있다.

중학교 이후 묵계리를 다시 찾은 것은 결혼 후였다. 포항에서 본가인 안동을 가려면 죽장을 지나 구불구불한 국도를 달려 묵계리를 지나야 안동 길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추석, 설을 포함해 1년에 두 번 이상은 지나다니는데 가끔은 차를 세우고 묵계서원과 만휴정을 거닐면 매번 방문객이라고는 우리뿐이었다.

어느 해 겨울, 글동무들과 안동 고택에서 하루를 묵고 돌아오며 만휴정에 들렀다. 너럭바위를 흐르는 폭포가 하얗게 얼어 장관이었다. 하회마을, 봉정사는 유명해서 다들 알고 있지만, 묵계서원과 만휴정은 지인들도 처음 듣는 곳이라 안동 곳곳에 숨겨진 보물이 많구나 하며 내 고향 칭찬을 했다. 더불어 이런 좋은 곳을 알고 데려 와줘 고맙다는 말도 얹어주니 더 으쓱했다. 그때도 한적하기만 해 계곡에 우리 발소리만 울렸었다. 지인 여러 무리를 계절 따라 이곳으로 데려와 산책만 해도 모두 고즈넉함에 반해버리곤 했었다. 나만 아는 그런 숨겨진 보물로 남아있을 줄 알았다.

지금은 강산이 네 번은 바뀌어 맨발로 건넜던 곳에 차가 다닐 수 있는 다리가 놓였고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높은 인기 덕분인지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도 생겼다. 아무 때나 가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이병헌과 김태리가 독립운동하듯 ‘러브 합시다’ 하며 악수를 나눴던 다리 앞에는 인증샷을 찍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묵계서원도 따라 유명해졌다. 옛 건물 그대로에 카페가 생겼고 ‘꼬마 도령 놀이터’라는 프로그램도 생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서원 마루에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 몇 안 되는데 이곳은 오래전부터 문이 열려있어서 나처럼 지나는 길에도 읍청루에 올라서 옛 선비들이 느꼈던 정취를 마음껏 맛보게 해주었다.

김순희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만휴정은 ‘만년에 휴식을 취할 곳’이라는 뜻으로 묵계의 깊은 산골짜기 송암 폭포 위에 있다. 산수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정자다. 영화 ‘미인도’, KBS ‘공주의 남자’ 촬영 배경이 될만한 경치이다.

지난 2015년에 보백당 종가에서 특별한 보물이 발견됐다. 1868년 ‘연시례(延諡禮)’를 지냈던 기록이 있는 일기를 찾아낸 것이다. 2017년에는 보백당 김계행 선생 서세 500주년을 맞아 ‘연시례 재현행사’가 묵계서원에서 열렸다. 연시례는 임금이 내린 시호, 교지를 지역유림과 관원들이 축하하면서 맞이하는 의식이다. 일기에는 시호를 청하는 내용과 서원·사당 수리, 행사에 대한 논의 등 연시례에 관한 모든 과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지금까지 임금이 내린 시호를 받은 선현들은 많았지만,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거의 부재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보백당선생 연시시 일기(寶白堂先生 延諡時 日記)’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지난해 가을에 수련회를 함께 간 친구들을 이곳에 데려갔다. 드라마의 그 유명한 장소가 여기였다는 것은 몰랐다고 한다. 나만 따라오라고 큰소리치며 만휴정으로 향했다. 가을 단풍에 물든 계곡은 더 아름다웠고 친구들의 탄성에 물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교회 옆 묵계서원 마당에서 투호 놀이를 하고 누각 읍청루에 올라 기둥 사이에 시절이 걸어놓은 풍경을 사진에 가득 담았다. 주차장 마당에 동네 주민들이 사과를 내놓고 팔았다. 단풍만큼 붉은 사과를 한 상자씩 싣고 내년에 또 안동에서 보자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좋은 곳은 친구들과 나눌 때 더 좋은 추억으로 간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