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한참 전 일이다. 동네 귀퉁이 작은 빵가게를 개업하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동네 자영업의 어려움과 단기 폐업을 많이 들었기에 ‘잘 돼야 될텐데’라는 막연한 걱정을 하며 물끄러미 쳐다봤다. 네 출발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동네 자영업은 잔뜩 기대로 시작하여 낭패를 경험하고 초라하게 마감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가게의 인지도를 빨리 높여야 한다는 조바심 탓인지 개업식은 꽤 거창하게 벌리는 경우가 있다. 축하화환을 가게 앞에 진열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벤트 회사에 의뢰하여 치어걸 같은 차림을 한 여성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가게 앞에서 춤을 추거나 홍보성 멘트를 큰소리로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개업사실을 알린다. 사람모양의 풍선이 흥겹게 춤을 춘다. 인형풍선이 이벤트에 동원되어 흔들거린다.

불어넣는 바람에 따라 춤을 추는 인형 풍선을 보고 있노라니 반평생 보낸 공직생활의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깊은 연민이 밀려왔다. 경찰직을 평생업으로 삼고 살아오면서 여러 형태의 정부를 겪었다. 정부의 성향과 최고 통치권자의 국정철학을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직업공무원으로서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것 같다. 공무원은 특정이념이나 정파에 관계없이 정치적인 중립이라는 헌법가치에 충실해야하는 규범적 의무감이 있다. 인형풍선처럼 뒤에서 바람을 불어넣는대로 춤을 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관료제를 주창한 막스 웨버는 ‘공직자는 영혼이 없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가치중립적으로 정부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해야한다고 이해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그 정부의 국정 기조에 맞춘다는 인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의지나 생각은 앞세우지 않아야 기계적인 도구로서 관료제의 기본 취지에 맞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효율적 관료제를 위한 지침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영혼이 없다’는 말은 비난의 말로 통용되고 있다. 아무 생각이나 개념없는 행동에 대한 비아냥섞인 말로 변질되었다. 뚜렷한 주관과 의식 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영혼이 없는 공직자’, 과연 이벤트 인형풍선 같은 것일까? 국정을 수행하는 통치권자의 정책들은 오른손이 달린 곳으로 바람을 세게 불어 넣으면 오른손이 춤을 추고 왼쪽으로 바람을 세게 불어 넣으면 왼손이 춤을 추는 그런 행태가 될 수 있다. 이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춘 공직자를 영혼이 없는 공직자라고 몰아세울 수만 있는 것일까? 공직자의 영혼, 공직을 맡는 동안 주권자인 국민에게 위탁해 둔 것은 아닐까? 국민은 자신들이 선택한 정부에 공직자의 영혼을 재위탁하여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닐까? 공직을 끝마치는 날 자신들의 영혼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지나친 아전인수식 해석일까?

맡긴 영혼을 찾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낡고 헤진 구멍으로 바람이 새나가서 용도 폐기된 인형풍선이 된 것 같다. 맑은 기운으로 빈 영혼을 다시 찰지게 채우고 싶다. 지금부터 내 영혼의 장단에 맞춰 신바람나게 춤을 추고 싶다. 바람따라 춤추는 이 땅의 많은 이벤트 인형풍선들이여 힘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