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추천과 관련해 ‘야당 비토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기습 상정했다. 여당의 날치기 행태는 제1야당 국민의힘이 그동안 반심을 써온 공수처 출범에 응할 의사를 밝힌 직후에 벌인 일이어서 그 저의가 의심된다. 지난해 입법과정에서 민주당이 누누이 강조해온 ‘독립성 약속’을 깨려는 의도에서 자행된 모종의 음모적 행태라면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야는 이날 오전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를 열어 관련 법안 논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법사위 간사 겸 제1소위 위원장인 백혜련 의원이 “공수처법 개정안을 상정하겠다”고 느닷없이 제안한 뒤 거수 표결로 통과시켰다. 상정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구성하는 공수처장 추천위를 여야 구분 없이 국회가 4명을 추천하는 것으로 바꾸는 내용이 핵심이다. 공수처 검사 자격요건을 ‘10년 이상 변호사’에서 ‘5년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국민의힘은 기자회견을 통해 “느닷없이 동의하는 분 손 들라고 해서 상정시켰다. 초등학생도 이렇게는 안 한다”고 맹비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공수처의 조속한 출범을 주문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현재 추천위원을 고르고 있다”고 공개하면서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에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환영한다”고 밝히면서도 “후보 추천을 기다리는 동시에 공수처법 개정안을 국회법 절차대로 심의해갈 것”이라며 압박의 고삐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이날 국회에서 여당의 기습상정이 감행된 것이다.

국민의힘이 ‘태업’전략을 써온 것을 잘한 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꾸리려고 법 자체를 바꾸는 행태는 독립성을 보장하는 핵심장치를 제거하는 횡포로써 전혀 정당성이 없다. 공수처법을 소망하는 국민의 참뜻과도 정면 배치된다. 야당의 동의 없이 공수처를 장악하려는 그 어떤 흑심도 옳지 않다. 야당과 함께 가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