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상이 박태원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그린 삽화, 두 사람은 카페에서 만나 당시의 카페문화를 예술창작의 대상으로 삼았다. 위(10회), 아래(13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간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모두에게 때때로 전하는 심심한 위로마저 위로가 되지 않는 시기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한 사회 속 고립을 실감하게 되는 것은 아주 작은 징후들로부터 찾아오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이라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사실 같은 것이 그렇다. 여기저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잃고 힘겹게 방황하고 있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의식하지 않지만,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공기의 움직임이나 그것을 호흡하는 과정처럼, 무언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삶에서 늘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일 것이다.

분명, 지금 한국 사회에서 카페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사회 활동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공간으로서, 또 누군가에게는 집밖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작업공간으로서,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온전히 ‘나’로 돌아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어느 샌가 카페가 없는 한국 사회를 상상하기 어려워져 버린 것만 같다.

카페 혹은 커피하우스가 우리 삶에 중요한 의미가 된 것은 단지 그곳이 개인의 공간이거나 공공 공간, 어느 쪽이 아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공 공간이라면 우리에게는 도서관도 있고, 공원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없다. 온전한 개인의 공간이라면, 나의 방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나’로서 있을 수 있지만, 이내 심심해지고 만다. 타인의 눈이 존재하면서, 또 타인의 눈이 신경 쓰이지 않는 공간. 유달리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카페는 공공공간과 개인공간의 사이에 놓여 있는 ‘섬’과 같은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카페에서 자신의 창작을 완성했고, 카페에서의 시간을 예찬해왔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카페가 갖고 있는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예찬했던 작가는 바로 이상(1910~1937)이었다. 스스로 ‘제비’ 같은 다방을 경영하기도 했던 그는 조각가 이순석이 경영하고 있던 종로의 카페 ‘낙랑팔라(樂浪Parlor)’를 드나들며 예술적 현장을 경험했던 예술지망생이기도 했다. 그는 카페에서 근대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것이다.

1936년에 쓴 ‘추등잡필’이라는 신문 칼럼에서 이상은 카페라는 공간 속에서 근대적인 예의와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강철과 콘크리트에 압박된 근대인의 삶을 위로하며, 시끄러운 삶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따뜻한 차와 음악이 존재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상은 그의 소설 ‘날개’에서도 한 명의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활동하지 못하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화폐의 기능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2층에 있었던 ‘티룸’으로 갈 수 있는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는가. 시대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예민한 자의식을 가진 작가 이상에게 있어 ‘카페’란 단순한 공간 이상의 삶의 변화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터와 집 사이에 놓인 휴식이자, 예술창작, 그리고 사회생활 모두를 상징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나면, 이제 우리는 다시 ‘카페’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퇴근 후 책 한 권을 찬찬히 읽을 여유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공간은, 아니 시간은 우리를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잠시라도 떨어뜨려 놓아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 지금은 조금 참아낼 이유와 가치가 있다.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