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등대박물관 앞 바다의 초록등대.

등대 여권을 받았다. 조카와 군산의 근대역사박물관에 들어가니 입구에 3층 높이의 하얀 등대가 버티고 섰다. 파란 지붕을 얹은 것이 그리스의 어느 섬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물관에 어떤 것이 있는지 동선을 보려고 팸플릿을 받으러 갔다. 안내데스크에서 초록색 표지의 딱딱한 여권 모양의 수첩도 손에 쥐어 주었다. 펴보니 전국에 있는 등대 지도와 그중에 어떤 곳엔 도장을 찍을 수 있고 완성하면 기념품도 주는 이벤트였다.

포항에는 오래된 대보등대와 국립등대박물관이 있으니 집에 돌아가면 얼른 달려가 여권에 확인도장을 두 개나 받아야지, 방학을 이용해 남해의 섬에 홀로선 등대도 접수하리라 다짐을 했다. 하지만 삶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던가.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자리 잡은 등대박물관을 오늘에야 찾았다. 구룡포 읍내를 지나서 가야 하는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효과인지 신항만 도로에서 내려서자 막히기 시작한 길은 읍내 전체가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항구를 빠져나오니 새로 난 길은 한산하게 뚫려 달리기 좋았다. 파란 하늘이 손에 닿을 듯 다가오고 옆으로 바다가 내내 같이 달렸다.

해맞이광장도 주말이라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국립등대박물관은 관람객이 거의 없어 우리 차지였다. 체온 측정 후 방문자 명단을 작성하고 유물관에 입장하니 입구에 엽서를 만드는 코너를 따로 마련해두었다. 등대박물관 스탬프 15가지와 항로 표지 스탬프 10개로 하얀 엽서에 나만의 무늬를 그려 넣을 수 있었다. 인어공주, 조가비, 물고기 한 마리, 대보등대, 상생의 손을 찍어 내 엽서를 완성했다. 그 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할 등대 모양 접기, 등대 탁본 등 체험거리도 다양했다. 등대 학교입학이라는 팸플릿을 들고 더 안으로 들어갔다.

세계 최초의 등대인 파로스 등대는 BC 28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세워졌고 우리나라 역사서에 등대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유사였다. 아유타국 지금의 인도에서 온 신부를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맞이하는 장면이다. 횃불로 배를 안내했다고 하니 등대의 옛 모습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등대를 구성하는 것들이 전시돼 있다. 우리나라 곳곳의 등대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이제는 제 역할을 다하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오래전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등대에 오르내린 대원의 등대일지도 보이고, 그때 받은 월급 명세서도 있었다. 손으로 쓴 월급 명세서 여백에 받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항목을 조목조목 적어놨다. 중학등록금 8000원, 주식, 부식, 병원. 몇 가지 되지도 않았는데 곗돈 380원이 모자란다고 적혀있다. 등대원의 힘겨운 삶이 고스란히 보인다. 등대지기란 노래를 들으면 아련해지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유물관을 나오니 오래되고 소박한 옛 박물관이 역사관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 호랑이 형상이 늠름하게 앉았고 하얀 등대가 점잖게 섰다. 1903년에 지은 대보 등대이다. 100년 넘은 역사를 간직한 지금은 호미곶등대로 부른다. 오래전 이곳에 와서 달팽이 모양의 계단을 밟고 올라봤던 기억이 있다. 박물관의 여러 곳이 닫힌 상태고 체험관은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없었지만 홈페이지를 보니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또 한 번 와봐야지 했다.

김순희 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등대박물관 앞바다에 초록 등대가 있다. 우현 표지인 빨간색과 좌현 표지인 흰색은 어느 항구에서나 자주 보지만 초록은 드물다. 근처에 암초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신호이다. 신호등에 초록 불이 켜지면 사람이든 차든 길이 열린다는 뜻인데 바다에서는 조심조심해서 가라는 당부를 초록 등대로 말해준다.

초록 등대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복잡한 구룡포 읍내 쪽이 아닌 임곡 방향으로 잡았다. 동해라 일몰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해질녘의 바다의 노을은 구름과 함께 나름의 시를 써서 보여주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오며 나는 바다만큼 아름다운 글을 쓰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사진으로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