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숙 희

손차양 너머로 구월은 다시 와서

자욱하던 잡목림 저만치 성글어지고

나무들 흰 정강이가 조금 더 야위었다

여울목은 깊어져 물소리 낮아지고

잠자리 가만 앉은 목이 긴 꽃대궁엔

꽃씨들 까만 약속이 저 혼자 여무는 소리

아득하던 것들 문득 환하게 뵈는 오늘

어지럽던 내 시에도 긴 수식어를 지우고

깨끗한 형용사 하나 기도처럼 앉히고 싶다

풍성한 신록의 성장(盛裝)을 벗는 9월의 숲을 바라보며 시인은 조금씩 버리며 야위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소담스런 결실을 위한 마련이고 준비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9월, 깨끗한 생명 연대들의 가을 노래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문학에의 정진을 다짐하는 겸허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