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선인장은 仙人掌, 신선의 손바닥이라 했나?

멀리 라스베거스 가는 애리조나 사막 드넓은 황무지에서 그대를 만났었지. 고국에 돌아와 나는 선인장 그대를 사랑한다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다짐했노라. 사랑은 찾는 데서 싹트고 물을 주는 데서 자라나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애절해질 수밖에 없다.

안성 가톨릭 신자들 숨어 살던 배티 성지 가던 길에 아름다운 선인장 하나를 사고, 또 대전 중앙시장 옆 대전천 천변 꽃집에서 선인장 하나를 또 샀지. 하나는 산호 선인장, 다른 하나는 철갑을 두른 듯 용맹하게 생긴 선인장이었다.

두 선인장 모두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여러 해를 살아왔으되 마치 헛 살아온 것처럼 선인장 키우는 법을 알지 못했다.

물은 오랫동안 머금을 수 있어 자주 주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향이 사막인 탓에 더위에도 추위에도 강하다는 것도 알았다. 한없는 어둠만 아니라면 꼭 햇살 따가운 곳이 아니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까지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것은 흙이 오히려 수분이 많아 축축해지면 선인장은 뿌리부터 썩어들어가 버린다는 사실이었다. 흙에도 물을 잘 내리는 흙이 있고 잔뜩 물을 흡수해서 진득진득한 상태로 오래 가는 흙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름 내내 비도 그렇게 질기디질기게 올 수 없고 그 끝에 태풍도 벌써 세 번째 북상 소식이 들리는데, 그 무덥고 축축한 여름이 오래 가는 사이에, 세상은 코로나 천지가 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측정의 도구조차 잃어버린 사이에, 나의 사랑하는 선인장 하나는 물에 뿌리가 젖어 생살이 썩어가듯 잎사귀가 짓무르며 그만 모진 목숨을 끊고야 말았다.

물 없이는 길게는 석삼 년씩도 사는 선인장이 있다는데, 이 여름처럼 습한 나날은 오히려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한 포기 선인장을 잃어 버리고 나의 방에는 이제 마지막 선인장 한 포기, 산호선인장밖에 없다. 푸른 머리카락을 길게, 메두사처럼, 그러나 아름답게 뻗어 올린 산호선인장은 사막처럼 바싹 메마른 외로운 방을 깊은 바닷물 속처럼 그윽하게 변모시킨다.

선인장 하나와 나 하나. 아주 오랜만에 혼자인 혼자만의 삶으로 돌아온 것 같은 지금, 홀로 남은 강인한, 고독을 견디는 선인장의 삶을 생각한다.

홀로 몇 스푼 아주 적은 수분에만 의지하며 적게 먹고 적게 쓰고 말없이 견디는 선인장의 미덕을 생각하며,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적게 살고 뜨겁고 차가운 대지 위에 홀로 많이 버텨야 한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해 보는 날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