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수<br>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영문 이메일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나는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 정말 행운의 소식이면 좋겠다.

이메일은 영문 ‘디어 위너(Dear Winner)’로 시작되었다. ‘친애하는 당첨자’라니, 우선 기분이 좋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내용을 대충 살폈다. 내 이메일 주소가, 올해 자사의 이 메일 프로모션에 당첨되어 축하한단다. 당첨금이 원화로 환산하니 무려 150억 원이나 되었다. 일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체 내용을 빨리 알기 위해, 인터넷의 영문번역기에서 전문을 우리말로 바꿔보았다. 따로 추첨에 참여하거나, 티켓을 끊을 필요는 없단다. 단지 이름, 주소, 나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만 답신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번역문을 읽으며 ‘스팸’, ‘피싱’ 같은 단어들이 함께 떠올라서다. 스팸문자, 스팸메일, 보이스피싱 등 사기(詐欺)나 범죄에 이용되는 통신수단에 당했다는 보도나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 우리 집도 보이스피싱을 몇 차례 겪은 적도 있다. 그러니 은연중에 스팸이나 피싱에 대한 대응력이 생겼으리라.

스팸메일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이면 좋겠다는 바람(望)도 마음 한구석에서 명지바람으로 일었다. 달콤한 유혹이다. 이율배반이다. 햄릿 증후군이기도 하겠다. 머리로는 아닌 줄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끌리는 심리상태를 또 경험한다.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 조화롭다면, 스팸메일이란 판단이 들었을 때 지웠어야 했다. 내 속물근성이 이 이메일 앞에서 또 이빨을 드러내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속 갈등을 한다.

“그래, 다른 이들도 같은 사례가 있나 찾아보자!”

내부 갈등의 타협안이 제시되면서, 내 손가락은 저절로 웹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작년에도, 올해도 똑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는 사람의 글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작년 것은 금액이 올해보다 적었지만, 올해 것은 금액도 같았다. 전자는 상담을 받는 것이고, 후자는 어떤 카페에 올린 글이다. 후자의 경우, 끝에 독자들과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결국 답신 메일을 보내고 말았다는 게시자의 고백도 있었다.

쓴웃음이 났다. 이성과 감성이 이런 상황에서도 싸운다.

“이봐! 스팸메일이 맞잖아? 괜히 헛꿈을 꾸었어. 시간도 버리고….”

“잠시 행복했잖아? 그러면 된 거지. 뭘 그리 따지고, 불평하는 거야?”

처음 복권을 사던 날이 떠올랐다. 주택복권이다. 아마도 70년대 중반쯤이었을 거다. 확실한 날짜를 알려고 일기장을 한참 뒤졌으나, 못 찾았다. 아마 회식을 마치고, 얼큰한 기분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으리라. 회식 중 동료들과 복권에 대해 갑론을박하다가 ‘복권은 바로 행운 부르기’란 말에 이끌려, 난생처음 100원짜리 주택복권 두 장을 손에 쥔 날이다. 술기운에, ‘이 복권으로 내 집을 살 것이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발길을 뗐었다. 조금 걷다가 어느 순간, ‘나도 그만 사행성 탁류에 휩쓸리고 말았구나!’ 하고 깨달으며, 하룻저녁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기억이다. ‘근면, 자조, 협동’의 역동적 사회 구조 안에서, 그 시절 내 눈엔 복권은 사행성의 징표일 뿐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젠 복권을 사행성 징표나, 노름같이 보는 시각은 사라졌다. 어떤 지인은 투자라며, 봉급을 타면 내 기준엔 제법 많은 일정 금액의 복권을 샀다. 문제는 ‘디어 위너’처럼 공적 복권을 사칭한 스팸메일 등, 사기를 치기 위한 정보가 횡행한다는 사실이다. 4차 산업 시대니, 5지(G)시대니 하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회의 정보기술 환경에 따라가기도 힘든 현대인들이다. 그들이 스팸이나 피싱 같은 사기에 시달리는 상황에 놓인 것은 대체 무얼 말해주는 걸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란 말이 있다. 인간과 생명은 아니, 만물은 이 말처럼 살고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우주 안 모든 존재의 존립 양상이 어찌 보면, ‘죽기를 각오하고, 모든 힘을 다하여 살고 또,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을 다잡아야, ‘친애하는 당첨자’처럼 달콤한 사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진정한 ‘디어 위너’만 있는 세상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