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사 사사자오층석탑과 삼세보전. 충효사는 영천시 자양면 별빛로 1538-17에 위치해 있다.

꿈자리가 어수선하여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태풍이 북상중이라는 소식으로 하늘빛조차 우울한데 영천댐 백리길 벚나무들은 꽃이 없어도 그 눈빛은 시리지가 않다. 나는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의 볼륨을 좀 더 높인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음악과 터널을 이루는 나무들 사이로 비쳐드는 잔잔한 물빛까지, 완벽한 축복의 아침이다.

보현산을 향해 달리던 차는 영천댐을 벗어나자 이내 충효사 앞에 이른다. 겉보기는 여느 사찰과 다름없이 평범하지만 어마어마한 크기의 오백나한상들 앞에서 무언가 색다른 분위기를 감지한다. 세계 최대 백옥 오백나한상은 석고로 빚은 듯 희디희다. 무심코 어느 나한상과 눈이 마주쳤는데 온몸이 오싹하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생명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오백 명의 제자들, 나한의 법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신통력이 자유자재하다고 한다. 오백나한상을 참배하고 기도하면 오백 분의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과 같으며 무량공덕을 짓는다고 하는데,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나오고 말았다. 나를 두렵게 한 그 눈빛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커다란 12지신상을 시작으로 불교 전시장을 들어선 듯 크고 작은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청이끼가 낀 약사여래불과 넓은 중앙에는 지장보살과 통일지장보살, 육지장보살이 우뚝하고 그 뒤를 메우고 있는 1인 1지장보살들까지, 경내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 사람이 한 분의 지장보살을 모시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업장소멸의 공덕을 쌓으며, 스스로 지장보살처럼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우러나 보살행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조상의 영구 위패가 모셔진 안양요까지 둘러보고 나니 영험한 지장보살 도량임이 드러난다. 오늘따라 사후의 세계가 왜 이토록 낯설고 멀게만 느껴질까.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혀 죽음과 삶을 분리시킨 채 떨고 있는 스스로를 지켜본다. 영가들은 편안히 잠들어 있는데 나만 잔뜩 긴장한 채 이방인처럼 헤매고 있다.

볼거리가 많을수록 온갖 상상과 억측들이 고개를 내밀고 마음은 점점 더 심산해진다. 중심전각으로 보이는 삼세보전의 법당문을 열자 과거불인 연등불, 현세불인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 부처님을 모두 모신 전각이라 삼세보전이라 이름 붙여진 듯하다. 신중단에는 경북 유형문화재인 사룡산금정암제석탱을, 다른 면은 일천지장보살 목탱으로 이루어진 위모설법전도 여느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법당 안은 아늑하고 편안한데, 허리 통증이 오늘도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조심스럽게 좌복 위에 무릎을 꿇으며 절을 시작한다. 선풍기를 틀어놓아도 등줄기에서는 쉴 새 없이 땀이 흐른다. 반이라도 하겠다는 처음의 마음은 결국 백팔배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때마침 단아한 비구니 스님이 사시 예불을 드리러 들어오신다.

예불이 시작되는데 나가기도 난처하다. 혼자 예불 보실 스님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얼떨결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스님은 한 시간이 넘도록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예불을 드리는데, 예불 절차나 격식, 진언조차 모르는 내게는 인고의 시간이 따로 없다. 하지만 끝내고 나니 백팔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충만한 기운들이 전신을 휘감는다.

인연이 닿아 회주 스님까지 뵐 수 있었다. 1993년 대웅전 하나로 시작한 충효사를 지금의 모습으로 사세를 확장시킨, 외모와 풍모가 수려하신 원로 스님이다. 덕을 갖춘 인자함과 사람을 편하게 하는 세련된 매너, 간간이 농담까지 곁들인 스님의 화술은 시간조차 잊게 만든다. ‘일체유심조’를 가슴에 새기고 21살 청춘의 나이로 생활하신다는 스님의 따뜻하고 경쾌한 미소가 곧 법문이다. 사찰 일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과 봉사로써 대중과 함께하는 스님은 깨달음과 해탈을 위해 수행하는 스님들과는 삶의 질감이 다르다.

스님은 오백나한 중 455번째 조사에 오른 신라 성덕왕의 셋째 아들인 무상공존자의 후신이라는 현몽을 꾼 후, 곧바로 그 분의 수행처를 찾아다니며 큰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미륵보살이 나타날 때까지 석가모니불을 대행하는 지장보살을 많은 불자들이 영가천도 정도로만 떠올리는 것이 안타까워 세계적인 지장도량을 만들겠다는 큰 포부다. 떠도는 영가를 위해 기도하고 49제 지장제를 백 번이나 올렸다는 스님의 정성과 열정이 존경스럽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사세가 기울어가는 천년고찰을 바라볼 때 밀려들던 안타까움과 달리 일촌의 역사를 가졌지만 충효사는 든든하고 희망적이다. 안이한 태도로 횟수만 거듭하는 나의 산사기행과 턱없이 부족한 불교 지식을 돌아보는 일조차 부끄러운데, 불교는 실천의 종교라는 말씀 앞에서 나는 또 한없이 작아진다. 모처럼 듣는 스님의 말씀이 단비가 되어 나를 적신다.

충효사를 나와 영천댐이 보이는 곳에 잠시 차를 세운다. 구름이 가득 끼어 있으면 해가 보이지 않는다는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스님의 법문집을 펼쳐든다. 말씀처럼 글도 편안하다. 행간마다 꽃이 피듯 새로운 다짐과 공감대가 자리 잡는다.

삶이 위태롭다고 느껴질 때 산사는 그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고, 스님의 말씀은 따뜻한 섬김이 되어 나를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