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

농촌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전원풍경을 백지에 그리며 가난하였지만 늘 행복한 나날을 보내었다.

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이사한 뒤 신문 배달을 하던 소년은 신문 만화가를 꿈꾸며 남몰래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그에게 만화는 보석같은 꿈이었고, 자존심이었다.

소원대로 소년이 자라 신문사의 만화가가 되었지만 이 젊은이의 야심작과 자존심을 담당국장이 날마다 평가절하하며 퇴짜를 놓았다.

“이걸 그림이라고 그리나? 차라리 그만두는 게 어떨까?”

늘 이런 소리를 듣던 그는 급기야 어느 날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던 곳에서 명예퇴직을 당하였고 돈도 벌지 못하여 생계를 위해 트럭 운전수로 제1차 세계대전을 겪기도 했다. 실의에 빠진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다가 다시 농촌으로 내려갔다. 농촌에서 한 교회의 지하창고를 빌려 쓰며 잡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하창고의 어둠은 바로 자신의 암담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지하창고가 보물창고로 변하는 일이 생겼다.

상처를 받고 절망했던 그는 창고를 뛰어 다니는 징그러운 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예쁘고 친밀감 있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쥐는 더이상 징그러운 존재가 아니었으며 흉물스러운 쥐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히니 오히려 다정한 말 벗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그림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키마우스’ 이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월트 디즈니. 오늘날 ‘디즈니랜드’의 주인이다. 젊은이는 미키마우스를 만든 다음, 메리 포핀스, 신데렐라, 피노키오, 피터팬 등과 같은 만화 영화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 디즈니라는 이름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와 1920년대 처음 등장한 ‘월트 디즈니’ 는 그 상업적 성공이 말해주듯 가장 많은 수의 캐릭터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 중에서도 미키마우스의 존재감은 월트 디즈니의 거대한 성공과 동의어로도 여겨진다. 디즈니에게는 쥐가 득실거리고 참혹했던 지하창고는 오히려 아이디어 창고가 되어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게 해주었다. 암울하고 어려운 시기가 오히려 창조와 기회의 계기가 된것이다.

폐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한 달여 만, 65세의 일기로 숨을 거둔 그는 사망하기전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기억하기 위해 장례식을 치르지 말아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공동 묘지에 안장 되었다.

월트 디즈니의 인생에서처럼 현재의 어려운 처지나 미운 동료, 싫은 친구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킨다면 내일은 밤하늘의 찬란한 별처럼 밝게 빛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보물창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