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의 기세가 무섭다. 사진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대폭 증가하기 직전인 지난 8월 15일 일부 보수 단체 주도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 /연합뉴스
다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의 기세가 무섭다. 사진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대폭 증가하기 직전인 지난 8월 15일 일부 보수 단체 주도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 /연합뉴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킹덤’은 조선시대 좀비물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오랜 기근에 굶주린 백성들이 죽은 사람의 시체를 솥에 고아 나눠먹으면서 역병은 시작된다. 카니발리즘에 동참한 이들은 사지가 뒤틀리고 피를 토하며 죽었다가 밤이면 좀비로 변해 산 사람들을 문다. 좀비에 물린 이들은 좀비가 되어 또 누군가를 물고…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하는 역병은 최초 발생지인 경남 부산을 넘어 경북 상주와 문경을 완전히 집어삼키더니 결국 한양까지 지옥으로 만들고 만다.

어떤 계시적 직관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일까. 전파 경로가 겹치는 건 흥미로운 우연성일 뿐이지만 ‘킹덤’의 좀비 역병과 코로나19 사이에는 근원적인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욕망을 숙주 삼아 자라난다는 것이다. 굶주림을 못 견뎌 인육을 먹은 사람들이 좀비가 되었던 것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박쥐를 잡아먹은 사람들의 몬도가네에서부터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월 최초 확진자가 나타난 후 물류센터와 콜센터 등 노동조건이 취약한 생계의 현장에서 전염병이 집단 유행했다. 먹고사는 일의 엄혹함 앞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무용하고 무력했다. 정부가 방역 체계를 완화하고 대체공휴일 지정 및 소비 쿠폰과 외식 환급금 지원 등 내수경제 활성화를 선택한 것 역시 ‘먹고사니즘’ 때문인데, 소비가 적극 장려된 8월 황금연휴 동안 사람들은 밀집했고, 밀접했고, 밀폐된 공간에서 경계심을 풀었다. 당연한 결과, 코로나 바이러스는 2차 대유행을 앞두고 있다.

전염병이 특정 집단 세력에게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 역시 드라마와 현실이 닮아 있다. ‘킹덤’에서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왕비와 영의정이 좀비 역병을 은폐하려 하고, 나아가서는 일부러 퍼뜨리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천지와 보수 개신교가 코로나19를 폭발적으로 확산시키는 주범이 되었는데, 이들은 종교 활동을 빙자한 정치 개입을 위해 방역당국이 금지하는 대규모 집회와 소모임을 강행했다.

종교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신도들은 감염 사실을 은폐한 채 사회시설을 이용해 시민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고, 이만희와 전광훈 등 종교지도자들이 전염병 확산의 책임을 회피하며 ‘음모론’과 ‘종교 탄압’을 주장하자 예배 자제를 당부하는 방역 지침을 ‘사탄의 거짓말’로 여겼다.

‘킹덤’에서 왕비는 결국 좀비가 되고 마는데,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도 드라마틱하다.

코로나 2차 대유행 국면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상이 종교인들에게서 나타났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사탄이 형님이라고 하겠다”는 세간의 조롱이 나돌 만하다. 이웃에 대한 희생과 헌신, 사랑을 실천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이웃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세상에 혐오와 갈등, 분쟁의 씨앗을 퍼뜨리고 있다.

“목숨 걸고 현장 예배를 드리겠다”는 외침은 마치 결사항전을 각오하는 군인처럼 서슬이 퍼랬는데, 결국 침과 비말 등 타액과 섞인 통성기도는 신에게 닿는 대신 선한 이웃들의 폐혈관 속으로 침투해 이 땅에 수백, 수천의 지옥을 확장하고야 말았다. 보수 개신교가 보여준 종교이기주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갖는 의미, 나아가 신의 위상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교회에 갔다. 좋아하던 이성친구가 교회에 다녔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웃는 얼굴 외에는 모든 것이 따분했지만, 날이 갈수록 중고등부 예배와 소모임, 수련회가 즐거워졌다. 부모와 자주 떨어져 지내던 나는 공동체에 속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 형제자매들의 중보기도와 따뜻한 환대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신을 본 것도 같았다.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에서 시작된 종교 활동은 점점 그럴듯한 신앙의 모습을 갖춰서, 20대 시절 나는 제법 큰 장로교회에서 성가대와 주일학교 교사, 청년부 회장으로 신을 섬겼다. 그때 눈을 감고 두 팔을 높이 든 채 찬송을 부르면 눈물이 났다.

내가 교회를 떠난 것은, 바리새인식 형식주의, 신앙을 패션인양 걸치고 과시하려는 속물근성, 비신앙인들에 대한 도덕적 우위 주장, 종친회 또는 향우회 모임이나 다를 바 없는 떼거리 문화, 수능 입시 기도회를 열거나 복을 내려달라며 산에 가 나무를 붙잡고 기도하는 등 예수가 아니라 무당이나 점쟁이를 바라는 기복신앙과 신비주의에의 맹목적 집착이 싫어서였다. 장로와 권사들은 자기 자식에겐 고시 공부나 취업에만 전념하라고 하면서 남의 자식에겐 봉사와 사역, 일꾼으로서의 헌신을 강요했다. 교회 내에서 비밀 연애를 하다 들킨 한 연인은 교회 어른들에 의해 강제로 갈라졌다.

그런 모습들을 목격하면서, 찬송을 부르며 흘리던 내 눈물이 종교적 파토스의 산물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깨달았다. 진리와 구원, 아가페적 사랑, 종말론이라는 신비주의가 극적인 장치를 지닌 음악과 결합할 때, 내 안에서 요동친 것은 신에 대한 순전한 믿음과 사랑이 아니라 이해가 결여된 비이성적 정념이었을 뿐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안다고 착각했던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원사이즈 기성복처럼 선택이 배제된 채 얌전히 입었던 기존 교리를 벗고, 신과 알몸으로 마주앉아 합리적 이성을 통해 그를 내 방식으로 이해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파토스에 가려졌던 교회의 민낯이 보였다. 한국교회가 기득권 집단임을 고발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신은 죽었다”던 니체의 선언 이후, 이제 사람들은 ‘죽은 신’(슬라보예 지젝), ‘침묵하는 신’(엔도 슈사쿠),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날 신이 몰락한 데에는 사회 공동체의 실재감 상실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에밀 뒤르켐은 종교와 사회가 서로 뗄 수 없는 것이며, 종교는 결국 교회라는 도덕적 사회 공동체를 원천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초월적인 신의 현현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포용’과 ‘연대’라는 공동체적 감각을 통해 희미하게 표상된 신의 이미지를 추종하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교회는 사회에 분열을 일으키고 공동체를 해체하는 데 앞장섰다.

이처럼 교회라는 도덕적 교사의 타락은 신에게서 위로와 연대의 감각을 마비시켜버렸다. 코로나 이슈뿐만 아니라 지난 십여 년 동안 한국교회가 어떤 정치적 스탠스를 취했는지, 성소수자와 미혼모, 팔레스타인 난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떠올려보면 대한민국에서 종교는 집단유대의 유지라는 사회적 기능을 상실했음이 더욱 자명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교회가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내리라 믿는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함께 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는 찬송을 부르면 아직 눈물이 난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 어떤 계명보다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우리는 바이러스보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혐오와 더 오래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타자 윤리가 마비된 곳에서 창궐하고, 분노와 혐오, 갈등도 거기서 비롯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던 예수의 가르침은 곧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 레비나스가 말한 비대칭적인 관계의 한 모범이다. 드라마 ‘킹덤’에서 좀비 역병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백성을 살리려 한 세자와 의녀, 개인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한 이름 없는 영웅들에 의해 종식된다.

김학중의 시 ‘요셉의 서’에서 신은 말한다. “인간은 아직도 인간을 사랑하지 않”기에 “나는 아직도 신이어야 한다”고.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때 비로소 신은 그 존재의 당위를 초월하여 유신론자도 무신론자도 알 수 없는 이름으로 호명되고, 아무도 모르게 간절한 기도들의 수신자가 되고, 마주보는 사람의 얼굴에서 반짝이는 어느 아침빛이 될 것이다. 부활과 구원, 천국은 오직 사랑으로만 닿을 수 있다고… 나는 사랑을 믿는 유신론자다. 이 시대의 이웃들과 같은 종교에 속해 있다.

 

이병철

이병철 시인
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