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지역 철강업계는 여타 산업계와 연대하여 비관세장벽을 두텁게 세우는 한편, 지금까지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수요산업과도 전략적 연대를 통해 국내시장과의 공급망을 치밀하게 연결시켜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미국 대선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P=연합뉴스

최근 미국 정계가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는 11월 3일 치뤄질 제46대 미국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 부통령을 지냈던 조 바이든(Joe Biden)씨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공화당 측 후보는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공화당 전당대회 이전부터 미국 연방정부 직원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해치법(Hatch Act) 위반 논란이 있었는데도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남편을 지지하는 연설을 강행하였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동 순방 출장 중인 가운데 영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였다. 뉴욕타임스지는 현직 국무장관의 특정 정당 지지연설은 7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며, 이는 국무부 내규에도 어긋난다고 보도하였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서 승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

앞으로 미국 정계에 어떠한 변수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여론조사결과 등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쉽지 않을 것만은 분명하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면서 백악관의 초기대응 미흡, 이로 인한 미국경제의 급격한 감속과 실업률 급증 등이 얽히면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된 전국 여론조사결과도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미국 대선의 승패를 좌지우지한다고 알려진 접전지역에서조차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우세를 나타내고 있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각 여론조사회사의 질, 시기적 근접성, 조사 수를 고려하여 평균한 데이터를 발표하는 미국의 정치분석 전문매체인 파이브서티에잇(538.com)에 따르면 8월 13일 현재 2020년 46대 미국 대선의 최대접전 지역인 6개 주(미시간, 팬실베니아, 위스콘신, 플로리다, 아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모두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6개 주는 사실 지난 2016년 대통령선거 당시 트럼프 후보가 모두 우세를 차지하였던 지역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전국 집계치에서 현직 트럼프 대통령은 42.4%의 지지율에 그쳤지만 바이든 후보는 51.0%의 지지를 받으며 8.5포인트나 앞섰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그 이후 조금씩 추격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전하지는 못한 상태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에서 뒤졌던 트럼프 대통령을 역전시켰던 ‘감춰진 트럼프지지자(hidden Trump voter)’가 이번에도 활약할 수는 있겠지만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져 역전시킬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당시 접전지역이었던 라스트벨트로 불리는 디트로이트나 클리블랜드 등 자동차와 철강산업 중심 지역에서 트럼프 후보가 경기 부양을 통한 고용개선을 주장하며 역전 득표에 성공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개정하고, 중국, 한국 등에 대한 철강 관세를 인상하며 ‘관세맨’으로 불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계에 몸담은 사람이 아닌 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궁금해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현 미국 대통령이 던진 관세 폭탄으로 큰 피해를 겪고 있는 포항의 철강업계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미국 대선 결과 대통령이 바뀐다면 과연 포항지역 산업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무역정책의 기조는 사실상 민주당 강경파의 무역정책 기조와 흐름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급격하게 감속한 미국경제의 조기 회복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현행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쉽다. 정책수단이야 관세보다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경제블록을 통한 간접적인 보호무역을 따를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선거와 같이 치뤄질 미국 통상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연방의회의 선거결과에 따른 영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시점에서는 민주당의 압승이 예측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누르고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제46대 대통령으로 바뀌거나, 연방의회에서 민주당이 절대적인 의석을 차지한다고 해서 포항의 철강업계가 지금의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절로 벗어나게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의 통상정책에서 중국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중국산 철강제품에 적용하는 강력한 제재조치의 여파는 고스란히 포항 철강업계에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든, 연방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든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가격경쟁력만을 무기로 내세워서는 미국의 장벽을 넘기 어려운 현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역 철강업계가 미국 시장에 침투하여 생존하려면 신제품, 신기술 등 고부가가치의 품질경쟁력을 내세운 제품, 그것도 세계적인 수준이 아닌 세계 유일의 철강제품이어야만 전천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능할 일도 있다. 지역 철강업계가 노릴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국내시장이며, 이 또한 지금까지와는 획기적인 전략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암묵적으로 국산 강재를 이용하는 광범위한 비관세장벽을 관련 업계가 함께 높여야만 한다. 저성장 기조에도 건설, 투자는 이루어진다. 문제는 빌딩, 아파트, 공장, 도로 등 인프라구축 등에 원가절감 등을 이유로 중국산 등 저가의 수입제품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본 등에서는 최대한 자국 철강을 위해 표준품셈, 주요 설계기준 등 보이지 않는 내부규칙을 이용하여 자국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교묘하게 장벽을 세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각국 모두 대문을 잠그는 데 우리만 열어두는 것은 어리석다. 국내산업의 쌀인 철강이 정상 작동하여야만 여타 기계, 금속, 자동차 등도 상호 간에 동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역 철강업계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나서야만 한다.

그리고 철강과 수요산업 간 전략적 제휴도 시급하다. 그동안 철강업계는 철강재를 만들어 놓기만 하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전방수요업계가 자신에게 적합하게 다시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었다. 하지만 독점적 공급자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손이 가는 고가의 국산 철강재를 사용할 수요자는 없다. 이제는 장사꾼처럼 고객이 어디에, 무슨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지까지 알아서 입에 떠먹여 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아가 그들의 신제품에 적합한 소재를 맞춤 제공하여 두 업체가 함께 번영을 추구하는 전략적 연대를 확대해야만 한다.

앞으로도 세계의 정치지도는 바뀔 것이고 그 변화의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의 수출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따라서 포항 철강업계가 앞으로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외충격에서도 흡수 가능한 내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국내 수요 산업과의 끈끈하고 질긴 공급망의 치밀한 연결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