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언한 조선시대 상소문 형식의 청원글이 화제다. 대통령과 측근 참모들을 통렬하게 질타하는 이 글에 대한 반응 역시 찬반양론으로 나뉘었다. 원고지로 약 70매에 달하는 ‘시무7조’ 청원은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청원인은 코로나19로 적지 않은 사람이 죽고, 이로 인한 경제활동 위축으로 서민들의 삶이 더욱 힘겨워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적시한 뒤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제 당파와 제 이익만 챙기며 폐하의 눈과 귀를 흐리고 병마와 증세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다”며 시무 7조를 고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글이 청와대 게시판에 제대로 노출되지 않자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일부러 비공개 처리를 한 것 아니냐는 은폐의혹도 나왔으나, 청와대는 “명예훼손 성격의 청원이나 중복청원 등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돼 작년부터 100명 이상의 사전동의를 받은 글만 내부 검토를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지난 12일 작성된 이 글에는 27일 오후 4시 현재 9만여 명이 동의했으나 게시판에는 공개처리가 돼 있지 않다. 게시물을 보려면 연결주소(URL)를 직접 입력해야 한다. 청원인은 이 글에서 “세금을 감하라”를 비롯해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기는 정책을 펼치라” “명분보다 실리를 중히 여기는 외교에 임하라”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라” “헌법의 가치를 지키라” “스스로 먼저 일신하라” 등을 조언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과 경제정책 전반을 조목조목 비판한 셈이다.

집권 초기 겸손하고 온건했던 문 대통령이 진영논리에 휩쓸렸다고 공개비판하는 목소리는 여당 내에서도 터져나왔다. 여당 내 쓴소리 4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금태섭 전 의원은 27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한국사회의 진영논리와 편가르기의 폐해를 언급한 뒤 진영논리를 부추긴 행위를 자제하라는 경고를 않은 문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쐈다. 그는 “지도자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그 자체가 메시지”라며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정권 초기 반대의견에 관대할 것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권위주의적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은 해외에서도 제기됐다. 최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정부와 여권 인사들에 대해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 진보통치자들이 발산한 내면의 권위주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임자로 나선 진보진영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부보다 평등하고 개방적이며 이견에 관대할 것을 약속했다. 이런 좋은 의도가 시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기사 말미에 “세종대왕의 1425년 어록에 글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고결하지도, 통치에 능숙하지도 않소. 하늘의 뜻에 어긋날 때도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보고, 내가 그 질책에 답하게 하시오.”오늘 우리는 질책에 답하는 지도자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