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답답해 보였다. 경북 안동 시골마을의 내과 의사였던 외할아버지는 늘 같은 모습이었다. 개인병원이었지만 ‘신내과’는 오늘날 동네 보건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을 사랑방 같기도 하였다.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의술 이야기’ 가운데 가장 신통하다 생각했던 한 자락이 있다. ‘전쟁통에도 병원 표식 빨간 십자가를 붙인 앰뷸런스는 폭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을 살리는 자동차이므로.’ 어린 마음에도 의술과 의사를 존경스럽게 여기는 세상의 생각이 느껴졌을까.

전쟁 한가운데가 아닌가.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 유엔(UN)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티에레스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선포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도 ‘이미 예견되었던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고 하였다. 뉴욕시장 앤드루 쿠오모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싸우고 있는 중’이라 표현했으며, 영국의 보건상 매트 핸콕도 ‘모든 것을 걸고 싸워 이겨야 하는 전쟁’이라 하였다. 위기를 거쳐오면서 보여준 우리 의료진의 노력과 수고가 돋보였다. 그들이 흘리는 땀 덕분에 K-방역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나라의 국격도 한층 향상되었다.

어려운 싸움 복판에 들려온 의료계 파업 소식은 충격이다. 국민은 영문도 모르고 어려움을 겪을지도 몰라 혼돈스럽다. 주장과 주장이 부딪히는 걸 보며 얼른 판단하기 쉽지않다. 의사를 더 많이 기르면서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생각의 틀은 보이지만, 준비 없이 졸속으로 진행하는 건 위험하다는 반론이 팽팽하다. 정부도 보다 세심하게 알리고 기획하며 입안했어야 했다.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까지 받은 의료계는 어찌해야 할 것인지. 의료공백은 평시에도 허용할 수 없지만, 오늘같은 전쟁터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국민의 건강이 경각에 달린 오늘, 최우선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했으면 한다. 나라가 가진 의료정책상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는 다음다음 문제가 아닌가. 전문적인 영역에서 심도있는 숙고와 토론으로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여도 탈이 날 터이고 집단행동으로 무엇을 끌어내어도 문제가 아닌가. 한 걸음씩 물러서는 용기를 발휘했으면 한다. 코로나19부터 물리쳐야 한다.

의사들을 믿는다. 섣부른 정책 추진이 의료 전반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하는 당신들의 진정을 믿는다. 정부를 믿는다. 모자라는 의사숫자를 확충하고 공공의료의 기틀을 세우겠다는 보건당국의 진정을 믿는다.

지금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어지러운 판에 혼란만 더할 뿐이 아닌가. 몸도 마음도 지쳤을 국민을 좀 편안하게 해 주시라. 주장으로 부딪힐 게 아니라 정책으로 겨루어 주시라. 행동으로 을러댈 게 아니라 이성으로 맞서 주시라. 의료는 남의 일이 아니라서, 국민도 주시하고 있음을 명심하시라. K-방역과 K-의료에 대한 신뢰를 믿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