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의 작품‘마태를 부르시는 그리스도’.
카라바조의 작품‘마태를 부르시는 그리스도’.

서양미술사에서 바로크는 르네상스에 이어서 나타난 양식으로 1600년경에서 대략 150여 년간 지속되었다. 바로크의 양식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화가는 카라바조(1573∼1610)이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인데, 북부 이탈리아 카라바조라는 시골마을 출신이기 때문에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다. 어린 시절 롬바르디아에서 그림을 배운 그는 1598년경 로마로 건너와 역사화, 풍속화, 정물화 등 회화의 여러 장르를 기웃거리다 1599년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콘타렐리 예배당을 위한 대형 작품을 의뢰받으면서 종교적인 주제에 집중한다. 콘타렐리 예배당을 위해 그린 세 점의 유화작품 중 ‘그리스도가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은 카라바조의 대표작이자 바로크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빛이 제대로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공간. 다섯 명의 사내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돈을 세고 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손을 들어 마태를 가리킨다. 위엄 있는 그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한 마태는 “저 말이십니까?”하고 반문하듯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마태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이던 세리였다. 당시 세리는 악랄하게 세금을 뜯어냈기 때문에 모두가 경멸하던 직업이다. 물질적 탐욕의 대명사이자 사회적으로 멸시받던 초라한 세리 마태를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자로 불렀던 것이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9장 9절은 이 장면을 고작 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지만, 카라바조는 바로크적 상상력으로 성서의 이야기를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광경으로 재구성하였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바로크적 스펙터클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요소는 빛이다. 어둠이 지배적인 공간을 강렬하게 침투하는 직선적인 빛은 극적인 명암대비를 만들어내 묘사된 장면에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카라바조의 빛은 공간 전체를 밝히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광원으로부터 흘러들어온 빛은 그림에 묘사된 인물들을 읽을 수 있도록 시선의 통로를 마련해 준다. 그리스도는 짙은 어둠에 둘러싸여 있지만 얼굴과 손을 밝혀주는 강한 빛으로 인물의 심리는 물론 그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지나친 빛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인물들의 얼굴을 강하게 비춰주고 있어 이들의 표정을 빠짐없이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빛을 통한 명암대비가 그림 전체의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그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은 독특한 화면 구성방식이다. 카라바조는 그림 속 장면을 마치 연극무대처럼 구성한다. 협소한 공간에 인물들을 밀집시킴으로써 집중력 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감상자들의 시선을 산만하게 만들 수 있는 부차적인 요소들은 과감하게 생략되었다.

카라바조의 회화적 연출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성서가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는 AD 30년경 중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림 속 인물들은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의상을 입고 있다. 이것은 그림에 현재성과 현장성을 불어넣기 위한 방법인데, 성서의 이야기가 마치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가장 바로크적인 요소는 현실의 건축적 공간과 빛을 회화 속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 ‘마태를 부르시는 그리스도’는 콘타렐리 예배당 좌측 벽면을 위해서 그려졌다. 예배당 중앙 상단 부분에는 반원형의 작은 창이 나있고, 그곳으로부터 빛이 들어와 실제로 예배당을 밝힌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면 화면 우측 상단에서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림만 보아서는 그 빛이 어디서 흘러들어오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화가는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실제의 빛을 알고 있었고, 그 빛을 그림 속으로 가지고 들어와 현실과 그림,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처럼 정형화되지 않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상식을 뛰어넘는 극적인 방법을 통하여 르네상스적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미적 경험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의 작품세계이다. /미술사학자 r김석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