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명 주

순비기를 아시나요

표선 바닷가 모래땅에 누워 하늘을 우러르는

나무보다 꽃보다 풀의 감각으로 내게 다가온 순비기

잎은 운주(雲柱)의 푸른 하늘 아래

오두마니 앉은 벅수를 닮았지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와불의 거대함이나

시간의 이끼를 돋운 천불천탑 웅혼함은 없어도

우리의 눈길을 끈 저 마을 입구

바람의 선한 기운의 영글어 맺은 순비기는

물배암처럼 제 몸을 뒤척이고 있었죠

혹여 내 몸이며 마음을 이끈 것이 저이기나 한 듯

저를 알아본 것이 필연이기나 한 듯

그 해안의 서늘한 기운으로 나를 잡아당겼죠

꽃과 잎을 따서 귀를 막으며

꿀꺽, 마른 침을

끈질기게 나를 따라붙던 세음(世音)

순비기 꽃향의 어질머리로 뒤척이고 있었죠

제주 해안가에 핀 순비기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본 시인은 물배암처럼 제 몸을 뒤척인다고 말하며 상상의 시상을 펼쳐보이고 있다. 제주 바다에 매혹 당한 시인의 감성은 참으로 발랄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본다. 푸른 물결과의 만남을 운명적 필연이라고 말하며 시인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 회복시켜주는 힘과 생명력을 그 물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