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생의 여성건강칼럼 자궁경부암의 조기검진과 예방접종

박영복 산부인과 교수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자궁경부암은 전 세계 여성에게서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입니다. 한때 ‘국내 여성암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환자가 많았습니다. 조기검진 프로그램이 활성화하면서 최근에는 유병률과 사망률 모두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국내 여성에게서 자주 또 흔히 발병하는 질환입니다.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질환으로, 성접촉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자궁경부 내부 표면에 있는 상태에서 70% 정도는 저절로 퇴화해 자연치유가 됩니다. 하지만 장기간 남아있던 바이러스가 자궁경부의 취약한 세포에 침투해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암세포로 바뀝니다. 이들 바이러스는 다양한 변종을 만듭니다. 16·18·31·33형과 같은 고위험 변종들은 자궁경부암, 6·11형과 같은 저위험 변종들은 생식기 사마귀를 유발합니다.

고위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곧바로 암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몇 가지 단계를 거치는데, 자궁경부 조기검진은 이러한 세포변형 단계를 미리 찾아내 증상 초기에 치료하기 위함입니다. 검사세포변형 단계나 상피내암 단계에서 발견되면, 자궁적출술을 하지 않고도 자궁경부 원추절제술과 같은 간단한 수술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통해 미리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6개월간 3회 접종을 받아야 하는데, 모든 바이러스를 백신이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전체 자궁경부암의 약 70∼80%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예방접종을 했더라도 정기검진은 꾸준히 받아야 합니다.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은 국가백신 사업으로 만 12∼13세에게 무료접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만 14세 미만의 경우 6개월간 2회 접종으로도 충분히 항체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최근 백신 접종대상이 확대되면서 만 45세 여성까지 가능하며, 성관계 여부와 관계없이 투여 가능합니다. 올해 무료접종 대상은 2007년 1월 1일생부터 2008년 12월 31일생입니다. 대상자는 가까운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에서 무료접종을 받으면 됩니다.

주목할 점은 선진국에서는 남자들도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대상자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호주 등에서는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이 국가 백신사업으로 포함되면서 남아들도 접종대상자입니다. 만 9∼14세는 2회, 14세 이상은 3회 접종을 권장합니다.

반면 국내에서 남아 접종은 권고사항일 뿐입니다. 식약청 승인은 났으나 국가 백신사업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남성도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남성은 자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왜 백신을 맞아야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성행위를 매개로 전염됩니다. 성관계를 갖는 남성도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아야 여성도 자궁경부암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습니다.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은 남성의 성기 사마귀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커플이 함께 백신을 맞으러 오는 일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남성의 자궁경부암 접종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형성돼 있지 않아 거의 시행되고 있지 않지만, 세계적인 추세로 봐서는 곧 접종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머지않아 결혼 전 예비신랑에게서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여부를 물어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