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 생활 포항지진 이재민들
무더운 날씨에 장마 겹쳐 이중고
균열로 문도 못 닫는 옛 터전엔
곰팡이·비 샌 자국만 남아있어
“높으신 분들 우리집 와봤으면
들어가 살라고 말 할 수 있겠나
실질적 피해 구제책 보여달라”

11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입구에 비를 담기 위한 양동이가 준비돼 있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3년이 다 되도록 이재민 생활을 할 줄 정말 몰랐어요. 도대체 언제쯤이면 모든 게 끝날까요?”

포항지진 이재민들이 무더운 날씨와 장마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11일 오전 11시께 지진 이재민들의 대피소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입구에는 ‘국가는 생색내기용 지진특별법을 만들지 말고 현실적인 법안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문구가 주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크게 붙어 있었다. 옆문에는 ‘대피소 생활 3000일째’라는 내용의 문구도 보였다.

이를 보면서 쓴웃음을 짓던 서민희(51·여)씨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같은 소위 높으신 분들이 제발 우리 집을 한 번만 와줬으면 한다”며 “그들이 우리 집을 실제로 보면 그곳에 다시 들어가서 살라는 말은 절대 못할 것이다”며 꼬집었다. 이어 “우리도 웬만하면 내 집에서 살고 싶은데 집의 손상이 심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곳에서 버티며 생활하고 있다”며 “포항지진은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던 지열발전소가 일으킨 명백한 인재다. 그런데 그 잘못의 책임은 모두 국가의 몫인데 왜 우리 보고 책임을 부담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재민들은 사계절 중에서도 여름철에 대피소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실내체육관에는 10여 대의 냉풍기가 가동되고 있었지만, 드넓은 체육관을 시원하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우득(81·여)씨는 “텐트 안은 푹푹 찐다. 밤에 잠을 자다가 너무 더워 숨이 막혀 잠에서 깬다”며 “여름에는 온갖 종류의 벌레가 나와서 벌레 잡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비가 오면 상황은 더욱 심해진다. 대피소의 천장에서 비가 새기 때문인데, 대피소 곳곳에는 빗물을 받기 위한 양동이와 쓰레기통이 있었다. 시민들은 양철로 된 체육관 지붕에 ‘타다다닥’하며 떨어지는 시끄러운 빗소리를 듣는 것도 곤욕이라고 호소했다.

지진 발생 전 이재민들의 터전이었던 곳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같은 날 오후에 방문한 북구 흥해읍에 있는 한미장관맨션은 무너진 담벼락과 건물 외벽에 생긴 균열, 아파트를 따라서 길게 설치된 낙석방지망 등이 그날의 상황을 연상시켰다. 집안의 상황은 더욱 처참했다. 주방, 화장실, 안방 등 모든 곳에서 실금이 보였다. 벽지는 곰팡이와 비 샌 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집이 기울어지면서 방문도 제대로 열고 닫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재민 홍순행(86·여)씨는 “지진특별법에는 국가는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한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왜 그걸 다시 국가가 마음대로 바꾸는지 모르겠다”며 “시행령 개정안의 지급 한도와 지급 비율을 없애고, 국가가 지진 피해자들을 100% 구제해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포항시가 우리 아파트를 빨리 사주고, 재개발·재건축하는 등 적극적인 행정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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