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전 쪽에서 내려다본 안국사 범종각과 청하루. 안국사는 전북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1050에 위치해 있다.

붉은 치마를 두른 것처럼 단풍이 요란하다는 적상산(赤裳山),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한여름에 오른다. 물안개가 산자락을 휘감고 있어 숲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마음이 이토록 평온한 것을 보니 불이문은 벌써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양수발전소 댐을 지나도 산은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참을 올라서야 안국사 일주문을 만났지만 해발 1000m의 고지대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금산사의 말사인 안국사는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 화상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가 복지(卜地)인 적상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광해군 6년(1614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려고 절을 증축하여 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

그 뒤 영조 47년(1771년)에 법당을 다시 지어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안국사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1910년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해왔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긴 계단을 올라 누하진입식으로 청하루를 통과하자 제 모습을 드러내는 안국사는 뜻밖에 소박하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극락전이 법당문을 활짝 열고 불자를 맞느라 여념이 없고, 큰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성보박물관과 그 위로 선원록을 봉안했던 적상산 사고 건축물인 천불전이 절의 품격을 더해 준다.

나는 법당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며 학이 단청을 하였다는 설화를 찾아 극락전을 돌아본다.

극락전을 지은 스님이 단청불사를 고심할 때, 하얀 도포를 입은 범상치 않은 노인이 나타나 단청을 해주겠다고 한다. 단청을 하는 백 일 동안 절대 들여다보지 말기를 당부했지만, 스님은 99일째 되던 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막 안을 들여다본다. 그 때 노인은 보이지 않고 학이 입에 붓을 물고 단청을 하다 낌새를 채고 날아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내소사의 대웅보전 단청 설화와 흡사해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극락전 뒤편 한쪽에는 하루 분량의 목재가 그대로 남아 있어 신비감을 실어준다. 재미로 그치던 설화가 오늘따라 묵직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호기심을 경계하는 숱한 신화들도 생각난다.

불경의 육바라밀 중에는 인욕바라밀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며 참고 견디는 수행을 말한다. 바라밀은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법으로,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번뇌와 고통이 없는 피안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보다 나은 인격을 갖추기 위해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다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반성할 때가 많다. 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육바라밀은 개인의 인격 완성 단계를 넘어 이타(利他)를 향한 덕목이라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대상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마음을 비워내면 자연히 인욕이 된다고 하지만, 바른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으로 참된 인욕바라밀을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장전 앞에서 사람들이 수런거린다. 가까이 가보니 풀밭 위에 커다란 뱀 한 마리가 가부좌를 한 듯 적당히 몸을 접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경꾼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혐오스런 눈빛들을 묵묵히 감내하며 참선이라도 하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람과 뱀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누군가 이 절에서 가끔 보았노라며 절 지킴이라고 말하자 그제야 하나 둘씩 자리를 뜬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붙박여 뱀의 눈빛을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며 연민의 눈빛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와 나의 정체조차 묘연해지는 순간이다. 는개를 맞으면서도 뱀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만 경내를 적시고 또 적신다.

조낭희 <br>​​​​​​​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사람들이 빠져나간 조용한 극락전에서 뒤늦게 백팔 배를 한다. 법당 안에는 영조 4년(1728년)에 기우제를 지낼 때 조성한 보물 제 1267호인 괘불이 사진에 담겨 있지만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동쪽으로 괘불함이 드나들 수 있는 앙증맞은 문 하나가 눈에 띤다. 마치 세상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문을 연상시킨다. 오직 저 문이 아니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 생명의 문처럼 특별해 보인다. 그동안 법당문을 여닫는데 마음을 모으느라, 있어도 보이지 않던 문이었다.

내 안에 존재하는 틀도 보인다. 그것은 안국사 돌 축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견고하고 무서운, 나의 의식과 에고가 빚어낸 프레임이다. 어떤 집착이나 사심 없이 대상을 대하려면 알에서 깨어나야 한다. 조금 전 보았던 뱀의 눈빛이 떠오르고 신비주의적인 진리를 상징하는 아프락사스도 생각난다. 그토록 몸을 오싹거리며 혐오하던 뱀도 상처가 생기거나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허물을 벗을 줄 안다.

학문의 길은 쌓고 또 쌓아야 의미가 있지만, 진리의 길은 버리고 또 버리며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고 했다. 노자의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상이라는 미혹한 옷 하나 벗을 줄 아는 지혜가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