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빠르게 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지난 2월 역대 최대 증가폭을 보인 후 5∼6월 주춤하는 듯했지만 7월 들어 다시 급증했다. 올해 증가폭은 약 14조원에 이른다.

9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7월말 기준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총 94조55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달보다 2조201억원(2.2%) 늘었다. 지난해 말에 비하면 13조6천24억원(16.9%)가 많다.

이들 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의 전월 대비 증가 폭은 올해 2월 2조7천34억으로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16년 이후 가장 컸다.

이후 3월(2조2천51억원)과 4월(2조135억원) 차츰 감소해 5월(1조4천615억원)과 6월(1조7천363억원)에는 2조원 아래로 내려갔지만, 지난달 다시 2조원대로 올라선 것이다.

올해 2∼4월 전세대출이 크게 늘었던 것은 정부 대출 규제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왔다.

작년 ‘12·16 부동산 대책’과 후속 대책으로 고가 주택 구입 시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워지자 주택 매매 수요가 감소하고 전세 수요가 늘었고, 전세 가격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었다.

7월의 급증세는 다소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통상 7월이 장마, 휴가 등으로 이사 수요가 적은 임대차 시장 비수기이고, 특히 전세 거래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서울시의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성사된 아파트 전세 계약은 6천304건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1년 이후 가장 적었다.

전세, 반전세, 월세까지 포함한 거래량은 8천344건으로, 계약이 가장 많았던 올해 2월의 43% 수준에 그쳤다.

경기도 전월세 거래량은 1만2천326건으로, 2월의 약 45%에 불과했다.

특히 ‘6.17 부동산 대책’ 중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조치가 지난달 10일부터 적용됐지만, 전세대출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부는 규제 지역에서 시세가 3억원이넘는 아파트를 사면 기존 전세대출을 갚도록 하고, 시세 9억원이 넘는 주택 보유자에게는 전세대출 보증을 제한하도록 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전세대출 증가는 가격 상승이 이끌었다는 해석이 힘을 받는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갭투자가 사실상 막히고 전세대출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이뤄졌는데도 증가 폭이 갈랐다는 것은 가격 상승 요인이 큰 것으로 보인다”며 “매매 가격 상승에 따라 전세 가격도 상승한 영향”이라고 말했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7월 전국 주택 전세가격은 전달보다 0.44% 올랐다.

서울은 전달 대비 0.68%, 수도권은 0.63% 증가율을 보였다. 대전(0.65%), 대구(0.32%), 울산(0.17%), 부산(0.12%), 광주(0.06%) 등 5대 광역시의 전세가격도 0.24%가 올랐다.

국민은행 부동산정보팀은 “전셋값이 수도권에서 높게 올랐고 다른 지역도 상승하면서 전국의 상승폭이 커졌다”며 “서울은 지역마다 공급 부족이 심화하면서 매매가 상승에 전셋값의 동반 상승이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전세대출 증가는 은행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전세대출 대부분은 보증서 담보대출이라 리스크 관리 부담이 거의 없어 ‘알짜 수익원’으로 분류된다.

정부 기관인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예금보험공사가 최대 주주인 서울보증이 대출금액의 100%까지 보증해준다.

은행들이 대출 과속을 걱정하면서도, 가계대출은 신용대출과 전세대출을 중심으로 확대하겠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전세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것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전세 매물이 많지않고 매매 가격 상승을 따라 전세 가격도 동반 상승하면서, 대출 상승세도 당분간은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5대 은행의 전세대출이 연내에 100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한국은행도 주택 전세가격은 하락 요인보다 상승 요인이 우세하다고 내다봤다.

반면 장기적으로 임대차 3법(전월세 신고제, 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의 시행으로 전세 가격 상승세가 꺾이고,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면 대출 증가세도 잦아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