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⑨ 기림사와 골굴사

골굴사 대적광전 앞에서 스님과 수행자들이 선무도 시범을 보이고 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3시부터 시범이 펼쳐진다. 주차장에서 대적광전까지 약 15분~20분가량 소요되니 관람을 원하면 여유 있게 도착하길 권한다.
골굴사 대적광전 앞에서 스님과 수행자들이 선무도 시범을 보이고 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3시부터 시범이 펼쳐진다. 주차장에서 대적광전까지 약 15분~20분가량 소요되니 관람을 원하면 여유 있게 도착하길 권한다.

비단 종교인만은 아닐 것이다. 무신론자들도 세상살이 번잡함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을 땐 절이나 성당, 또는 교회를 찾아간다. 주위에서 그런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자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낯선 곳으로 떠난 여행에선 오래된 사원이나 이름난 중세 성당을 빼놓지 않고 방문하곤 했다. 종교를 떠나 인간 모두에겐 안식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찾았던 몇 해 전엔 불가리아 정교회 교당에 갔었다. 검은 망토를 두른 성직자의 나지막한 음성을 들으며 기대하지 않았던 안정과 편안함을 얻었다. 그 감정은 일상에선 얻기 힘든 특별한 선물 같은 것이었다.
 

경주 양북면에 자리한 기림사

643년 선덕여왕 때 창건한 목조건물의 절
원효대사가 임정사→기림사로 명칭 변경
보물 제833호 대적광전·명부전 등 건물 앞엔
한자 주련 푯말들… 해석 글 읽다보면 재미 솔솔

기림사에서 차로 10분 거리 골굴사

보물 제581호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등
응회암 절벽 깎아 만든 ‘인공 석굴사원’
함월산 불교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 자랑
스님들 무술시범 등 일반 사찰과는 다른 특별함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6세기 무렵 응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골굴사 석굴 법당의 모습. 원안사진은 골굴사 석굴 법당의 모습.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6세기 무렵 응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골굴사 석굴 법당의 모습. 원안사진은 골굴사 석굴 법당의 모습.

◆ 평화로운 산사(山寺)의 여름 풍경을 만나러…

여름이 진홍빛 복숭아처럼 무르익고 있다. 햇살은 뜨겁고 장마는 길었다. 곧 폭염과 열대야가 지루하게 이어질 게 분명하다. 답답한 도시에 갇혀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고, 스스로는 스트레스에 지쳐가는 계절. 이럴 땐 시원스런 매미 울음과 짙푸른 녹음이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는 조용한 산사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잠시잠깐이지만 푸르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자신을 던져 넣고 싶어지는 시기다.

경주시 양북면에 자리한 기림사와 골굴사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요구에 맞춤하는 안식처가 될 수 있을 듯했다.

지척에 위치한 두 사찰은 오르는 길의 매혹적인 풍경과 조용한 절의 공기가 여행자를 유혹한다. 곳곳에 핀 색색깔 꽃들에게서 풍겨오는 향기도 세파에 시달려온 우리를 위로해준다.

동국대학교 한상길 교수는 “불교 사찰은 좁은 의미에서는 수행과 포교를 위해 수행자가 거주하는 곳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1천500년 이상을 가꿔 온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이 함축되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기림사와 골굴사 또한 경주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집약돼 있는 ‘서라벌의 보물’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기자가 탄 차는 어느새 기림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다.

 

◆ 크고 작은 꽃들이 반기는 기림사

10~15분 남짓, 절로 향하는 길이 더위에 지친 이들의 어깨를 다독인다.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은 시원스럽고, 숲을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은 더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가 발행한 핸드북은 제목부터가 관광객을 설레게 한다. ‘나를 위한 행복여행’. 거기선 기림사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래 옮긴다.

“여러 문헌에 의하면 인도의 승려인 광유성인(光有聖人)이 제자 안락국에게 ‘해동의 신령한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한 길지(吉地)에 임정사(林井寺)를 창건하고, 오정수(五淨水)를 길어 차를 달여 부처 앞에 공양 올리며 수행하라고 했다. 이를 통해 신라시대에 이미 기림사에서 차가 재배되고 있었고, 이 도량의 역사가 차와 함께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중략) 기림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훈련 주둔지이기도 했다.”

기림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미적 완성도를 갖춘 건축물과 함께 무더위 속에서도 자신의 빛깔을 간직한 갖가지 여름꽃들이 사찰을 찾은 연인과 가족을 반겼다. 그 앞에서 8월의 폭염이 한풀 꺾이고 있었다.

독특한 점은 또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보물제 833호)과 명부전 등 기림사 내 건물들 앞엔 주련(柱聯·벽이나 기둥에 쓰인 글귀)을 해석한 푯말이 서있다. 다른 절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대부분이 한자이기에 그 뜻이 궁금해도 어쩔 수 없이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여행자들에겐 기림사 주련을 읽는 재미도 만만찮을 것 같았다.

기자 역시 “세상에 악을 행하는 사람은 많지만, 착하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은 적다”라는 푯말 앞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여러 번 읽어야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문장이었다.

기림사를 찾는다면 누구나 보게 되는 대적광전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 기림사의 본전으로 신라시대 때 만들어졌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며 제 모습을 많은 부분 잃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조선 정조 10년(1786년) 경주부윤이었던 김광묵이 중창(重創·낡은 건물을 고쳐 다시 지음)한 것.

안팎이 두루 아름다운 기림사는 여름에도 좋지만,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더 유명하다. 시원한 물 한 잔을 달게 마시고 대적광전 계단에 앉아 경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열었다. 거기선 이런 설명이 이어졌다.

“기림사는 선덕여왕 때인 643년 창건됐다. 당시 이름은 임정사였는데 원효대사가 기림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엔 불국사를 비롯해 6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린 거대한 사찰이었다. ‘비로자나 삼신불’이 봉안된 대적광전과 약사전,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지휘본부로 사용된 진남루 등 귀한 유산을 품고 있다. 대적광전을 마주보고 좌측 계단에 오르면 3천 개의 하얀 불상이 본존불 주변을 둘러싼 삼천불전(三千佛殿)이 있다.”

유유자적 기림사를 구석구석 돌아보곤 다가오는 가을에 다시 한 번 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는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울긋불긋한 단풍을 만날 수 있겠지. 그 기대만으로도 지루한 여름을 견뎌낼 힘이 생겨났다.

이제 기림사에서 자동차로 5~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골굴사와 만날 시간이다. 거기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림사의 본전인 대적광전(오른쪽·보물 제833호)과 법당의 모습.
기림사의 본전인 대적광전(오른쪽·보물 제833호)과 법당의 모습.

◆ ‘한국의 둔황’으로 불리는 골굴사

고상현의 논문 ‘골굴사와 선무도의 축전 문화콘텐츠 연구’는 이렇게 시작된다.

“골굴사는 경주 양북면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석굴사원(石窟寺院)이다. 조선시대에는 골굴사 내에 12곳의 석굴사원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이곳에선 신라 말기인 9세기 후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581호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골굴사 역시 가람(伽藍)으로 올라가는 길이 적요해서 인상적이다. 온갖 소음과 네온사인 불빛이 사람을 어지럽게 만드는 도시에선 경험해보지 못한 여유로운 산책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이런 게 피서지로 산사를 찾는 이유가 아닐지.

경주 시내에서 동해 쪽으로 20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골굴사는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6세기 무렵 10개가 넘는 석굴을 만들었고, 이것들은 법당으로 사용됐다. 응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인공 석굴사원이기에 ‘한국의 둔황(敦煌)’으로도 불리는 골굴사.

20~30대 시절. 인도와 라오스를 여행하던 기자는 크고 작은 동굴 안에 만들어진 불상의 신비스러움에 매료되곤 했다. 조그만 한 점도 깎아내기 힘든 단단한 바위에 거대한 부처의 형상을 새기고, 그 공간을 불당처럼 조성한 옛사람들의 신심(信心)에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골굴사를 포함한 세상의 석굴사원 모두는 신을 향한 인간의 믿음이 어떤 일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실물로 보여주는 진경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신론자가 보기엔 놀라운 모습. 경내에서 올려다보는 깎아지른 절벽과 새파란 하늘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골굴사는 삶의 유한함과 꿈의 무한함을 깨닫게 하는 공간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저기 돌아보며 흐른 땀을 식히려 그늘을 찾아가던 길. 골굴사가 ‘선무도(禪武道)의 본산’이며 승려들의 시범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정보도 알게 됐다. 오래전부터 불가(佛家)의 전통적 수행법으로 내려왔다는 선무도. 신라의 화랑들도 수련한 무예라고 하니, 궁금한 사람들은 공연 시간에 맞춰 골굴사를 찾으면 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 이용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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