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 지음·북하우스 펴냄
인문·1만5천원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현대철학자이자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슬라보예 지젝(71)은 ‘팬데믹 패닉’(북하우스)을 통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세계에 긴급한 제언을 전한다.

그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의 의미와 대처 방안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정리하면서 “감염병 덕분에 우리가 더 현명해지리라는 주장은 의심스럽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바이러스가 우리 삶의 기반들 자체를 흔들어놓을 것이며, 엄청난 고통은 물론 대공황보다 더 극심한 경제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길은 없고 새로운 일상이 우리 삶의 잔해들로부터 만들어지거나, 이미 조짐이 선명하게 보이는 새로운 야만에 접어들게 될 터”라고 비관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경고했음에도 우리를 아무 대비 없이 파국에 빠지게 만든 우리 시스템은 뭐가 잘못된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병철의 ‘근시안적’ 사태 진단과 조르조 아감벤의 국가권력에 대한 ‘반사적’ 비판 등 다른 철학자들의 발언을 검토한 뒤 “지금 이 순간 어느 정도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반사적으로 ‘감시’와 ‘통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방역과 경제를 양립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방역과 대립하는 것은 빈부 격차와 노동 착취로 연명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경제일 뿐이며 이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기회비용만 따져 한시적 위기를 넘기려는 조치는 불안정 노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을 담보로 건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공산주의’를 들고나온다.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현실에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구체적 정치체제로서 공산주의가 아니라 ‘누구나 능력에 따라, 누구나 필요에 따라’라는 마르크스의 슬로건에 담긴 정신을 구현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마스크, 진단 키트, 산소호흡기 같은 의료장비부터 곡물에 이르기까지 생명과 생존에 관련된 물품의 생산과 공급을 시장 메커니즘에 의탁하지 않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조절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윤희정기자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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