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조선 중기 시인 어무적(魚無迹)이 지적한 병폐들이 오늘날의 적폐와 겹치면서 시대가 달라도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하려는 핵심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무적은 연산군 때 인물로 사직(司直)을 지낸 어효량과 관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이기에 신분제의 한계로 과거를 보지 못했지만 뛰어난 재주를 인정받아 면천(免賤)되어 율려습독관이라는 말직을 지냈다. 당시 가난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이 유민들의 탄식을 담아 지은 시가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유민탄(流民嘆)’이란 제목으로 올려 있다. 이 시는 먼저 곤란에 처한 백성이 굶주려 곤궁하고, 헐벗어 고통 받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토로하며, 나라에서 구제할 힘이 있는데 마음이 없음을 원망한다. 다음으로 관리들이 욕심을 비우고 백성의 소리를 들으라고 한탄하며, 나라에서 구제책을 내도 지방에는 헛된 종이장이니, 청렴하고 제대로 된 인재를 뽑아서 백성들을 구제하라고 탄식한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7년(1501), 7월 28일’ 에 어무적이 올린 장문의 상소문이 있다. 김해에서 백성의 어려움을 담은 상소를 올렸으나 무시되자, 무리한 세금으로 고통에 빠진 백성을 대변해 작매부(斫梅賦)를 지어 관리의 횡포를 비난했다. 이 상소문의 첫머리에 재앙의 징조가 자주 나타나는 것이 미진한 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며, ‘물이 새는 지붕은 위에 있지만, 물이 새는 줄 아는 자는 밑에 있다’라는 말로 자신이 상소를 올리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 말은 위에서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고스란히 아래에 있는 백성들 몫임을 비유한 것이다.

어무적은 이 상소에서 몇 가지 조목들을 나열해 폐단을 바로잡을 것을 주장했다. 그 첫째가 큰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으로, 군주가 마음과 뜻을 곧고 성실하게 해야 천리가 이기고 욕심이 사라져 군자가 모이고 소인이 멀어지며, 간신이 간사함을 부릴 수 없고, 권력자가 성패를 좌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둘째는 선비들의 기개를 진작시키는 길은 언로(言路)를 크게 틔워 어진 이를 쓰고 부정한 사람을 물리치라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도 사대부들의 잔치에 가무(歌舞)의 폐단을 없애 공검(恭儉)한 교화를 펼칠 것과 곡식을 축내는 술을 금지할 것, 이단을 금하는 법을 세울 것 등을 주장했다. 어무적은 1501년 이 상소로 쫓겨 다니다 객사하였지만 오늘날 우리 정치에 던지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고 본다.

국민의 생명과 윤리는 뒷전이고 권력과 이윤만이 판을 치며 다투는 사회를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믿으면 속는 것이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떠돌이 백성마냥 마음의 혼란을 겪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삶을 절실하게 이해하고 도우려는 위정자는 드물다.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개혁이란 이름을 빌린 완장부대가 망나니 칼춤을 연상케 하는 작태를 벌이고 있는 시국이다. 500여 년 전 조선의 한 시인의 노래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우리 정치판을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