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빵은 담백하니 맛있다.

코로나로 인해 먼 나라 여행은 당분간 어려워졌다. 식사를 오래 거르면 허기가 지듯 여행이 고파서 10년 전 앨범을 들췄다.

12시간 비행 끝에 밤늦게 이스탄불공항에 도착, 우리나라와 7시간의 시차가 있다. 현지 가이드가 내일 일정은 새벽 4시 30분에 모닝콜, 5시 30분에 식사, 6시 30분에 출발을 하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이야긴지. 4시 30분부터 강행하는 여행이 어디 있는지. 그런데 그렇게 해도 다들 따라올 거라고 장담했다. 다음날 새벽, 가이드 예언대로 일어나서 씻고 아침밥 먹고, 우리는 지금 차에 앉아 있다. 이게 시차라는 거구나. 서울은 지금 오전 11시 30분이니까 내 몸은 그 시간에 맞춰져 있었다. 패기지 여행의 묘미다.

앙카라를 떠나 카파도키아로 가는 길에 차창 밖 풍경을 찍었다. 터키사람들은 왜 넓은 들판 놔두고 산에 다닥다닥 집을 지었을까? 들판엔 밭이 넓게 펼쳐졌는데 왜 농로가 보이지 않는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사람들이 가이드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물어볼 때마다 참 대답하기 힘들다고 했다. 터키의 역사를 물어봐야 편할 텐데 난 왜 이런 게 궁금할까.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서 그런가. 와우, 들판 풍경이 컴퓨터 배경화면이다. 좋다.

터키사람들 사는 집들이 우리나라 산동네 같기도 한 것이 또 부산의 언덕배기 동네를 닮았다. 카파도키아 길가에서 히잡을 쓴 아줌마가 아이를 안고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드니 세워준다. 택시도 아니고 버스가 서는 것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에서도 손님이 손을 드는 곳이 곧 정류장이 되었다. 많은 것들이 내 고향과 닮아 참 정이 간다. 형제의 나라라서 그런가.

스머프 집 같은 유적지 구경이 끝나니 배가 고프다. 점심 먹을 장소로 이동. 맨 먼저 스프가 나온다. 닭고기 국물에 콩가루를 푼 것 같은 맛이다. 그리고 당근, 치커리, 샐러드가 나오고 빵이 나온다. 공갈빵같이 구멍을 내면 뜨거운 김이 나오고 빵이 납작해진다. 따뜻해서 빵이 참 맛있다. 주 요리인 케밥이 나왔다. 올리브유에 볶고 소금 간을 해서 밥이 짭짤하다. 반찬이니 짜게 나오는 게 맞는 거겠지만 압력솥에 앉힌 우리 집 현미밥이 그립다. 하루밖에 안 지났건만.

터키의 시골 마을을 지나는데 저녁때가 되어가니 집들마다 지붕에 나 있는 굴뚝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 가이드의 말이 빵을 굽는 중이라 그렇다고 했다. 어릴 적 저녁 어스름에 동네 어귀를 들어설 때면 집집마다 밥하느라 마을이 온통 안개에 쌓인 듯 했다. ‘밥안개’였다. 그럼 저것은 터키의 ‘빵안개’인가? 달리는 버스를 세워 빵이 구워지는 냄새를 맡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김순희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터키여행은 인내였다.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터키에 왔더니 버스를 8시간 타고 움직이는 것은 그러려니 한다. 밥이 아닌 빵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러고 나니 그 속에 사는 사람도 그 곳을 여행하는 이도 보이기 시작했다. 길에는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 걸어서 길을 잇고 있는 사람. 유럽이 가까이 있어서 젊은 사람들은 배낭을 메고, 나이가 들어 연금 타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처럼 관광버스로, 어떤 방법으로든 삶을 살찌우는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나는 책 한 권을 읽었다. ‘간송 전형필’, 우리문화지킴이이며 박물관까지 만드신 분의 이야기이다. 터키에 가보니 우리문화에 대해 내가 너무 모른다는 걸 더 느꼈다. 우리에게도 유네스코 등록 문화재가 얼마나 많은데. 공부해야겠다.

우리에겐 스토리텔러가 필요하다. 그 작은 트로이를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와 보게 만드는 것은 스토리의 힘이다. 우리 집 가까이 있는 장기읍성이 트로이 성보다 덩치만으로는 훨씬 크다. 그러니 수원화성은 트로이를 앞서 가야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영화로 소설로 세계인을 우리 동네로 이끌 이야기꾼이 절실하다. 잘 간직하고 널리 알려야 세계의 사람들이 보러 올 것이다. 빵안개 못지않은 밥안개의 나라 한국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