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잠시 상주작가로 일할 때였습니다. 일찌감치 집을 나서곤 했습니다. 주차 공간을 확보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아침 시간을 마디게 활용하기 위해서였지요. 중앙 출입문을 통과하면 미화 담당 여사님이 가장 먼저 반겼습니다. 연두색 앞치마를 두른 채 대걸레 하나로 로비와 계단을 누비는 그녀는 누가 봐도 에너자이저였습니다. 밀대를 쥔 여사님 손끝, 붉은 메니큐어가 그 열정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고희 넘은 연세인데 환갑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젊고 유쾌한 분이었습니다. 언제 봐도 분양받고 싶은 기운이었습니다.

여사님이 마지막 순서로 제 공간을 청소할 때면, 웬만하면 함께 차를 마셨습니다. 노고에 대한 제 나름의 소박한 소통법이었지요. 하루 십여 분도 되지 않는 티타임이었지만 여사님과 친구가 되는 그 순간이 좋았습니다. 동료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여사님은 다음해에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봐 걱정하곤 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뻔한 말로 저는 여사님을 응원하곤 했습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일찍 출근했습니다. 여사님은 아직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심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데 “안 돼!” 하는 여사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흠칫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밀려났습니다. 복도 바닥에 노란 테이프로 경계선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락스로 바닥 대청소를 한 뒤 말리는 중이었습니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하려면 아직 삼십 분 정도 남았기에 여사님은 안심하고 바닥에 락스를 뿌렸겠지요. 너무 일찍 나온 제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순간 바닥을 밟을까봐 본능적으로 막은 것이었지요.

여사님의 적극적이고 친절한 경고 덕에 락스 자국을 남기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금세 그 사실을 잊은 채 찻물을 받기 위해 복도 한쪽 정수기로 향했습니다. 정수기 하얀 머리 위에 전에 없던 소품이 놓여 있었습니다. 피로회복제 음료를 등받이 삼아 단정한 글씨체의 메모지가 붙어 있습니다. 여사님 앞으로 배달된 쪽지입니다. 얼핏 봐도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여사님 손에 들어가기 전, 얼른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급한 도둑 촬영이 말해주듯 엉성한 컷이지만 공유하고 싶은 장면입니다.

열람실 공식 개방 시간 전에 도서관에 입장하는 성실 이용자가 있었습니다. 수험생인듯한 그녀는 매번 그렇게 일찍 눈에 띄었습니다. 복도 휴게자리에서 공부하다가 열람실 문이 열리면 곧장 들어가곤 했습니다. 메모지 내용을 보니 그녀가 남긴 것 같았습니다. 저보다 앞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다가 여사님이 뿌려놓은 락스를 밟은 모양이었습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다시 바닥을 닦아야 하는 여사님에게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을 전한 것이지요.

저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세제를 밟아 바닥을 더럽힌 일은 아주 사소한 실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도 충분한 사과가 될 사안이지요. 한데 못내 아쉬웠는지 저렇게 마음 담은 메모까지 남겼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타인의 친절 시간, 그 순간을 상상하는 일이 곧 피로회복제였습니다.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소설가

뒤늦게 메모를 발견한 여사님이 소녀 얼굴을 한 채 달려왔습니다. 상기된 얼굴로 아침부터 감동이랍니다. 메모지를 가볍게 흔들며 새침한 표정으로 일할 맛 난다 하십니다. 처음 본 것처럼 저 역시 가슴 따뜻해지는 일이라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집에 가서 손녀에게 자랑하겠다는 여사님에게 저는 이 상황을 글로 써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사님을 배웅하면서 제 눈길은 복도 끝에 가닿았습니다. 아직 열람실 문이 열리기 전이고, 휴게용 간이 테이블, 책에 얼굴을 묻듯 열중한 그녀가 보였습니다. 모른 척 따뜻한 차 한 잔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종이컵에 담은 훈기지만 작은 응원이 되길 바랐습니다. 꼬부랑 원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보아 전문직 공부를 하는 수험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해 될까 봐 말은 건네지 못했습니다. 공부에 앞서 온기를 먼저 간직한 그녀이기에 무조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다음날에도 복도 그 자리, 그녀는 주위를 잊은 듯 책에 머리를 맞대고 있었습니다. 습관인 듯 저는 파이팅을 대신하는 차 한 잔을 놓고 돌아섰습니다. ‘사소한 맘 씀 덕에 일할 맛 난다‘는 여사님의 새침한 표정이 전달되기를 바랐습니다. 고맙다고 수줍게 말하던 그녀가 제 예상대로 수험생이었다면 좋은 소식이 있었기를 바랍니다. 섣부른 상상일지 모르지만, 전문인이 된 그녀가 소박하고 건실한 사람들 곁을 살피는 일을 오래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결같은 여사님은 누구보다 먼저 나와 고요한 도서관 곳곳을 밀대로 닦았습니다. 수험생 그녀 역시 복도 구석진 자리에 붙박이로 있었지요. 열람실 문이 열릴 때까지 고개조차 들 마음 없이 책과 하나가 되어 있곤 했지요. 그들과 함께 조금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저는 묵묵히 찻물을 데우곤 했습니다. 사소하지만 훈훈한 기운이 도서관 전체로 퍼져나가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