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가 행정부 견제라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 채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하고 있다. 출범 초기 협치(協治)를 입줄에 올린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들, 원로들의 바람은 여지없이 허언이 됐다. 정부·여당의 그악한 일방통행 독주를 바라보는 민심이 경악에 빠지고 있다. 이래저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겪고 있는 이 나라에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씨가 마를 지경에 놓인 현실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민주당은 28일 국회 기획재정·국토교통·행정안전위원회를 열어 종부세법 개정안을 비롯한 11건의 부동산 관련 법안을 줄줄이 통과시켰다. 국회법 58조에 명시된 대체토론, 축조심사 및 찬반 토론, 소위원회의 심사·보고 등 일체의 과정이 묵살됐다. 야당 간사가 “의사일정 합의가 없었고 국회법에도 어긋난다”고 항의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회 연설에서 “최고의 민생 과제는 부동산대책”이라면서 “국회가 입법으로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정부 대책은 반쪽짜리”라며 압박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수적 우위를 앞세운 민주당은 7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8월 4일까지 입법 절차를 끝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래통합당 기재위원들은 “의회 민주주의는 오늘 사망했다”고 한탄했지만 공허한 외침이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날 각 상임위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법안 처리 메커니즘이 동일한 패턴으로 굳어질 가능성이다. ‘민주당의 법안상정 주장’에 이어 ‘통합당 반발 후 퇴장’이 이어지고, ‘민주당 단독 처리’ 순으로 진행되는 일이 반복될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총선에서 49%를 얻은 정치세력이 100%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돼 있는 우리의 권력 구조의 모순이 무서운 부작용을 낳고 있다.

상임위를 다 포기하고 여당을 향해 “마음대로 해 보라”고 떠밀어낸 것이 제1야당 미래통합당의 전략인 만큼 작금의 사태는 놀라울 일이 아니다. 잘못되면 책임지라는 심산이지만, 문제는 나라가 회복 불능 상태로 망가지고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참상이다. ‘독주’를 넘어 ‘독재’ 행태로 가고 있는 권부의 꼴을 바라보는 애꿎은 국민만 애가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