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간행된 ‘개정일본지지요략’에 나오는 대일본국전도. 일본 영토와 달리 독도와 울릉도에는 색칠 표시가 없다
1886년 간행된 ‘개정일본지지요략’에 나오는 대일본국전도. 일본 영토와 달리 독도와 울릉도에는 색칠 표시가 없다

최근 발행된 일본 문부성의 검정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 주장은 일본이 자신들의 역사를 무시하고 뒤집는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일본 메이지(明治 1867~1912년) 시기인 1889년 문부성의 검정을 받은 최초의 교과서에 ‘독도는 조선 영토’(저자 오쓰키 슈지(大摫修二, 1845∼1931)로 기술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 1905년 2월 22일 일본이 독도가 임자 없는 땅이라며 시마네현에 무단 편입하기 전까지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국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추가됐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런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 '일본 메이지 시기 오쓰키 슈지의 '일본지지요략' 편찬과 독도 인식'을 최근 동북아역사재단 학술지 '동북아역사논총'에 게재했다

19세기에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국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메이지 시대 초기 일본의 대표적인 지리·지문학자로, 수많은 지리교과서와 부도를 편찬한 오쓰키의 여러 저작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한 교수는 논문에서 오쓰키가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개정일본지지요략’이 1889년 8월 7일 전국 사범학교의 예비교사들과 중학생들을 위한 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는 자격증인 ‘문부성 검정제’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규명했다.

‘개정일본지지요략’을 통해 나타난 오쓰키의 지리적 인식은 다른 저서인 ‘지학계제’ ‘소학지지요략내국지’ ‘소학지지요략부도내국지부’ 등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오쓰키는 1875년 ‘일본지지요략’을 간행한 후 1886년 이를 보완한 ‘개정일본지지요략’을 출간했다. 기존의 선행연구를 통해 규명된 바와 같이 ‘개정일본지지요략’에 ‘오키(隱岐)섬의 서북 해상에 죽도(竹島·울릉도)와 송도(松島·독도) 두 섬이 있다.

서로 떨어지기를 거의 100리로, 조선에서는 울릉도(蔚陵嶋)라고 칭한다. 근래 결정해 그 (조선)국의 속도(屬島)가 되었다고 한다. 고 기술했다.

오쓰키는 당시 일본의 최고 국가기관이었던 태정관(太政官)이 1877년 ‘죽도 외 1도(송도)는 일본과 관계없음을 명심할 것’이라는 지령을 내림에 따라 ‘근래’에 두 섬이 조선의 영토가 됐다고 명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오쓰키는 1874년 '일본지지략'과 1875년 '일본지지요략'을 간행한 후 1886년 이를 보완한 '개정일본지지요략'을 출간했다.

'일본지지략'은 일본 문부성(文部省)이 최초로 발행한 소학교 일본지리교과서로 그 이후 편찬된 교과서의 기준이 됐으며, '일본지지요략'은 소학교 상등교과서이자 사범학교 참고서로 사용됐다.

한 교수는 “일본 정부 차원의 교과서 검정제는 1887년께 도입됐는데 ‘개정일본지지요략’은 독도를 조선의 영토라고 기술한 저술 가운데 처음으로 문부성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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