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던 무시무시한 악당이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에 초대해 쇠침대에 눕히고는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서 죽였다.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억지로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비유하는 관용구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Procrustean bed)’ 연원이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의 정치행태를 보면 로마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 이야기가 절로 떠오른다.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은 4·15총선 결과 절대다수 의석을 준 민의(民意)를 아전인수로 침소봉대하고 있음이 확연하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주문 외우듯 하지만, 행태는 점점 비민주적이다.

21대 국회 시작부터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야당에 배려함으로써 국회의 견제기능을 보장하던 전통과 관행을 무시하고 점령해버렸다. 국회의 발목을 잡아 온 구태(舊態)를 핑계대지만, 상대적으로 야당을 오래 해온 자신들 발등을 찍는 소리에 불과하다. 집권 4년 차에도 기억에 남을 만한 잘된 정책도 없다. 난장판이 된 부동산 시장은 그 대표적인 실패의 상징이다.

문재인 정권 초반의 특징은 ‘전 정부 탓’이었다. ‘적폐청산’이라는 운동권적 선동 광풍으로 입법·사법·행정부를 야금야금 장악했다. 야당의 무기력에 힘입어 총선압승을 일궈낸 뒤에는 의회독주 쓰나미가 점입가경이다. 권력이 ‘준법의식(遵法意識)’을 포기한 나라의 미래는 어찌 될까. 이 정권은 자기들 뜻대로 안 되면 곧바로 ‘법 개정’을 말한다.

자기들끼리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으로도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지 못하게 되자 대뜸 법을 바꾸겠단다. 내년 4월 재보선에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기 위해 ‘당원투표’ 꼼수를 동원해서 당헌도 바꾸겠단다. 사나워진 민심을 일순 잡아 돌릴 요량으로 꺼낸 ‘행정수도 이전’ 꽃놀이패를 위해서는 ‘개헌하면 된다’고 간단히 말한다. 삼권(三權)을 다 거머쥔 정권답게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소위 ‘검언유착’이라는 이름으로 벌이고 있는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과의 공모 의혹사건에서도 정부·여당의 불순한 권력 행태는 판을 친다.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을 뒷배로 놓은 중앙지검장은 직속 상관 검찰총장에 반기를 들고 싸운다. 수사심의위원회가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중단하라고 결정하자, 자기들이 만든 심의위가 잘못됐다며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모두가 끔찍한 반민주적 횡포들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에서 정말 치를 떨게 하는 대목은 그 침대에 침대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비밀 장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나그네도 모두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음험한 계략이었다. 야비한 살인자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러나 아테네 최고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에게 걸려들어 자신의 악행과 똑같은 수법으로 쇠침대에서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