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경<br>동화작가
최미경
동화작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젤 앞에서 붓을 들고 있는 그대와 지금 이 순간에도 노트북 앞에서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그대와 지금 이 순간에도 대본을 쥐고 여러 톤의 감정으로 대사를 뱉어내고 있을 그대여.

재료비를 벌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배달을 하고 있는 그대와 공연에 올릴 안무를 구상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손님이 고른 메뉴를 적고 있을 그대와 악기를 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전전하고 있을 그대여.

그대, 젊은 예술가여. 안녕하신가.

그림 그만둘까 합니다. 애들 분유 값도 못 버는데 가장은 무슨 가장인가요…. 무대에 서는 일은 나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요. 아직 어머니 용돈 한번 제대로 드린 적 없어요. 이런 제가 무대에서 관객에게 박수받을 자격이 있나요…. 한 문장에 얼마씩 쳐주면 글 쓰겠어요. 그런데 쓰면 뭐하나요. 아무리 열심히 써 대도 발표할 지면 하나 마땅한 곳이 없는데요…. 좋은 작품요? 아니요, 잘 팔리는 작품이 필요해요. 내 작업요? 내 예술관이요? 아니요, 잘 팔아주는 루트가 필요해요. 그래야 작품 팔아서 재료비라도 벌죠….

지금 당장 그만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이 불운한 시대를 버티고 있는 그대, 젊은 예술가여.

그대의 작업과 삶을 잇는 전선(電線)은 튼튼한가, 그대 삶과 작업 전선(前線)에 전력을 밀어 넣어줄 동력은 충분한가.

이렇게 안부를 전하는 나는, 안녕한가. 사는 일에 급급해 쓰는 일은 뒤로 미룬다는 핑계를 아직 입에 달고 사는가. 좀 더 나이 들면 좀 더 안정되면 그때 쓸 수 있겠지, 라는 믿지 못할 약속에 아직 기대고 있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순간순간 나를 설득하며 아직 견디는가. 그래서 정작 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그대, 나여. 나, 그대여.

이 전선(戰線)에서 오늘 우리가 안녕하길 바라는 건 가혹한 희망인가, 정직한 절망인가. 점점 누추해지는 그대 인생의 봇짐을 단지 그대 한 사람의 잘못으로 내칠 것인가. 아니면 그대와 나, 우리의 봇짐을 모두 풀어내 하나의 목소리를 낼 것인가.

그대여, 그대 예술가여!

하나의 목소리로 날을 세우자. 한 사람의 목소리는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수 있지만 열 명, 백 명, 천 명의 목소리는 허공을 뚫는 피뢰침이 될 수 있다. 지역의 예술 환경에 대해 지역작가로서 받는 예술복지에 대해 작품을 판매하는 지역 판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자.

숨지 말고 나와서 귀를 열고 눈을 뜨자. 곪은 것은 터뜨리고 해진 것은 기우고 싸워야 할 때는 맞서자. 그렇게 그대의 빵과 그대의 영혼이 예술 전선(電線)으로 튼튼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그대의 작품활동이 그대 가족과 같이 나눌 빵이 될 수 있도록. 그대 전선(前線)에서 예술은 하나의 삶이 되도록.

그대 젊은 예술가여. 우리 이제 안녕, 하자. 우리가 이제 안녕, 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