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을 드러낸 청와대의 검경수사권 시행령안 초안의 내용이 경악할 수준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지난주 법무부 등 관계기관에 보낸 검찰청법 개정안 시행령 잠정안(초안)에는 검사의 수사 범위를 4급 이상 공직자로 대폭 제한하고, 중대 사건의 경우 법무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만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끔찍한 내용이 담겼다. 잠정안의 내용에는 ‘검찰 장악’을 끊임없이 획책해온 권부의 흉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잠정안은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를 4급 이상 공직자·3천만 원 이상 뇌물 사건·마약 밀수 범죄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범위 밖의 5급 이하 공직자 범죄·3천만 원 미만 뇌물죄·마약 소지죄 등은 경찰이 수사하라는 것이다. 3급 이상 고위공직자를 수사대상으로 하는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면 검찰의 수사 범위는 더 좁아진다. 간단히 말해서 검찰은 졸지에 ‘쭉정이’ 조직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대목은 시행령에 ‘검찰이 수사할 대상’으로 적혀 있지 않은 사건 중 ‘국가·사회적으로 중대하거나 국민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려고 할 때는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부분이다. 잠정안은 우선 상위법인 검찰청법 제4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지난 2월 개정된 검찰청법 4조(검사의 직무)는 검찰의 수사 범위에 대해 ‘부패 범죄·경제 범죄·공직자 범죄·선거 범죄·방위사업 범죄·대형 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등에 대해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대상·직급에는 별도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사실상 법무부 장관이 검찰수사를 총지휘하도록 하는 것은 검찰개혁의 핵심인 ‘정치적 중립성’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조치로서 심각하다.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법무부 장관과 일부 친여 국회의원의 검찰총장 능욕 행패만 보더라도 정치인 국무위원이 검찰수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큰일 날 일이다. 이 야만시대로의 퇴보를 막아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막을 힘이 마땅치 않다. 브레이크 없는 전차가 돼버린 권력의 무한 질주가 참으로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