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제이아그로(주) 대표·한국자유총연맹 대구지부 회장 정영만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가며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는 정영만 대표.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가며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는 정영만 대표.

정영만 제이아그로(주) 대표의 인생을 바꾼 것은 농우바이오라는 회사에 취직을 하면서였다. 이 회사는 종자 육종 및 육성연구를 하는 회사로 우리나라에서는 이 분야에서 굴지의 회사이다. 경남 의령에서 한지협동조합을 설립해서 한지를 생산하고 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생각했던 그의 인생은 이 회사에 취직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농우바이오에서는 그를 기업체 간부 및 사회적 리더를 양성하는 일본의 후즈노미야 양성학교에 유학을 보내 주었다. 그에게서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37살 때 농우바이오의 총괄본부장으로 취임했다. 그 회사에 다니는 동안 그는 외국의 선진문물을 견학하면서 안목을 넓혔고, 후즈노미야 양성학교에서 배운 리더십을 통해 빠르게 리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농사 준비하다 종자 육종 연구회사 취직

회사 도움으로 日 리더양성 학교로 유학

퇴사 후 친환경 농업제제 전문기업 설립

특허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

농대학생·다문화가정 지원 재단 만들어

2014년 자유총연맹과 첫 인연 맺은 후

지난해 대구지부 회장 맡아 활발한 활동

“통일 준비는 인적·물적준비 함께 가야

안보·통일 관련 작은 일부터 실천할 것”

그러다가 사업을 하기 위해 그 회사를 퇴직했다. 농우바이오와 겹치는 종자육종 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였다. 자신을 키운 회사의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회사를 차린다는 것은 그로서도 허용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윤리였다. 그러나 농사를 떠난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그가 그때까지 배워 온 것도 농사와 관련된 일이었다. 고민을 하던 그는 시골의 땅이 농약과 화학비료 때문에 생명을 잃어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 땅을 되살릴 결심을 했다. 땅이 살아야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농업인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정부나 농업인은 생산의 극대화에만 치우쳐 땅이 죽어가는 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일찍부터 친환경에 주목했다.

식물영양물질과 특수기능성 식물 생장 및 보호물질을 공급하는 기능성 농업제제 전문기업인 제이아그로(주)는 그렇게 창업되었다. 농업 생산량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던 해충들을 농약으로 손쉽게 해결하던 처방학이 만연해 있던 기존의 풍토에서 식물을 어릴 때부터 강하고 단단하게 키워 병 발생을 줄이고 수확량까지 늘릴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예방학이 필요했다. 화학비료와 인체에 위험한 농약을 줄이는 것은 우선 땅을 살리고 농업인을 살리는 일이었다. 화학비료는 식물을 부쩍부쩍 자라게 해주고 농약은 온갖 해충을 박멸해 주었지만 그 대신 땅과 농업인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제이아그로(주)는 미국의 스톨러사, 이탈리아의 발아그로사, 일본의 하야시사 등 세계를 대표하는 농업제제 회사들과 기술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친환경 최첨단의 제제들을 농업인들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농업인들의 삶과 가까이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회사에서 생산한 제품을 팔아야 하지만 당장 눈앞의 매출에만 신경 쓰기보다는 진정으로 농업인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을 개발하고 공급해야 하는 것은 이미 농우바이오에서 배운 철학이었다. 정 대표 역시 그때 배운 마인드로 농업인이 먼저 사는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했다. 그 결과 그의 회사는 우리나라 농업회사 중에서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가 되었다. 농업인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미네랄이 풍부한 기능성 고급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은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수입농산물을 이겨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러한 실천 가능한 친환경농업 이론을 개발한 공로로 2011년 친환경 농업유공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또한 지식경영인 대상과 대한민국사회봉사대상을 수상하면서 정 대표는 선도적인 농업전문경영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회사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정 대표는 사회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농대학생과 다문화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했다. 정 대표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스톨러제이 재단에서도 지원을 해왔다.

“봉사가 계속되면서 제일 걱정되는 게 봉사의 진실성을 잃고 겉멋에 빠져 들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면 그 멋 때문에 원래의 의미를 잃게 되거든요.”

그리고 그는 회사 직원과의 나눔에 나섰다. 회사는 자신 혼자 키운 것이 아니라 직원 모두의 힘으로 키운 것이기 때문에 성과도 나눌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식이 회사를 물려받았을 때를 대비해 회사 사규를 개정했다. 농업 분야의 회사를 둘러보면 창업주의 2세가 회사를 물려받아 성공한 회사는 거의 없었다. 이것을 보면서 그는 회사 사규를 아예 개정해 버렸다.

“내 자식들은 내가 제시하는 조건에 동의해야만 주식을 받을 수 있어요.”

어떤 조건인지 궁금했지만 회사의 운영에 대한 문제라서 그것까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그의 표정으로 봐서 자식이 그 회사를 쉽게 물려받아 자기 마음대로 운영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주와 직원의 관계 또한 사규 개정을 통해 보완했다. 정 대표는 주주와 직원이 평등한 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를 원했다. 그는 회사 안에서 작은 혁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이면서 직원 모두의 회사여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대화 도중 그가 말한 인디언 스틱은 흥미로웠다.

“인디언들은 부족회의를 할 때 스틱을 받은 1인만 발언을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권위주의 문화가 강하고 토론문화가 발달되지 않아서 남의 발언 도중에 끼어드는 경우가 흔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회의 때 이 인디언 스틱을 활용합니다. 인디언 스틱을 가진 사람이 발언하는 도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일체 끼어들 수가 없어요. 어떠한 불평도, 항의도, 변명도 허용되지 않는 거죠. 인디언 스틱은 말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 주고, 다른 사람들은 듣는 훈련을 하는 거죠. 그러면 인디언 스틱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나는 이 제도가 참 좋다고 생각해요.”

 

“봉사의 진실성을 잃고 겉멋에 빠져 들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됩니다.

잘한다고 칭찬하면 그 멋 때문에 원래의 의미를 잃게 되거든요.”

회사나 단체는 윗사람의 발언이 길어지고 아랫사람의 발언은 종종 중간에서 제지를 당하는데, 그러다보면 충분한 의견 개진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만으로 그가 얼마나 직원들이나 단체 구성원들을 존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 대표는 젊은 시절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현지에서 100여 차례 이상 체류하면서 국제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그 안목은 회사 경영에서도 드러나지만 그의 사회생활 이력에서도 드러난다. 대구경찰청 외사자문위원장을 하면서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부모의 모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 부분에서 두각을 드러낼 것이라고 본다.

정 대표는 경찰청 외사협력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을 통해 2014년 자유총연맹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자유총연맹은 건전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치적 중립을 선언한 단체로 그는 수석부회장을 맡으면서 이 단체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2019년 12월 대구지부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 정 대표는 지부의 재정적인 안정과 회원들의 고령화 탈피를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조직 개편을 통해 ‘다문화가정 끌어안기 사업’과 회원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유튜브 아카데미’를 개설해 평생 교육의 장을 마련하였다.

이미 봉사에는 어느 정도 이력이 쌓인지라 자유총연맹 회장의 역할도 그는 무겁게 받아들인다.

“통일 준비는 인적, 물적 준비가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선 작은 일부터 실천할 수 있어야 해요. 국가기념일이 되면 태극기 달기 캠페인부터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마중물 사업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안보와 통일에 대한 작은 일을 하려고 해요.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취미교실, 장학사업, 김장 나눔, 고추장 나눔사업 등은 굳이 국가가 아니라도 시민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죠. 한반도 숲 가꾸기 운동도 추진하고 있는데 남북한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 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업의 성공과 사회단체장의 역할은 맥을 같이한다. 한 번 성공해 본 사람이 다른 성공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가 자유총연맹에 가진 애착을 보면서 머지않아 그 단체 또한 그의 회사처럼 비약적인 성과를 거두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졌다. ‘도전하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격언이 생각난다. /글 천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