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4월 배만식씨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짜장면 식사를 하는 모습.

금장대 암각화에 얼굴이 있다.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생식기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어머니와 동네에 위치한 금장대와 암각화 근처로 자주 산책을 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어머니는 바위에 새겨진 사람 얼굴과 발자국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신기해하셨다. 긴 세월동안 암각화는 점점 닳았고, 어머니도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어머니 방에는 늘 약봉지가 많았다. 오래 전부터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장의 역할을 하시느라 골병이 들었던 것이다. 통증이 심한 날은 약을 한줌씩 털어 넣었다.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갔을 때, 백혈병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나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암제를 투여하면서 부작용은 어머니를 더 힘들게 했다.

마냥 병원에 있을 수 없어 퇴원을 했다. 그 무렵 치매도 심해져 내게 걸려오는 전화는 일을 못 할 정도로 잦았다. 결국 ‘세상에 오직 한 분’이라는 번호를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어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매달 몇 번씩 수혈을 반복했지만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만 갔다. 심신이 지칠 때면, 암각화 앞에서 합장하며 병을 낫게 해달라고 소원했다.

 

지난 2006년 8월 배만식씨 어머니 칠순 생일 때 가족 사진.
지난 2006년 8월 배만식씨 어머니 칠순 생일 때 가족 사진.

시간이 흐르면서 병세는 급성기로 전환되었다. 수혈빈도가 잦아지자 이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어린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밥을 굶기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처럼 절박한 심정이었다.

어느덧 황금빛 들판도, 붉은 단풍도 사라져갔다.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마음에 바위를 매단 듯 무거웠다.

바람이 세차게 불던 저녁 무렵, 병원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임종으로 가는 힘든 순간을 버티며 막내를 기다렸던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미 삶의 마지막 고개를 넘고 계시는 상황이었다. 차가워지는 어머니의 볼을 쓰다듬으며 ‘이제 마음을 내려놓으세요’라고 달랬다.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후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어머니와 병원을 오가던 시간은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다. 일을 핑계로 걸려오던 전화를 차단한 죄스러움은 오히려 간절한 바람이 되었다.

어머니께서 마지막 한 줌 재로 이승을 떠난 후에도 자주 암각화를 바라보곤 한다. 나도 모르게 바위에 새겨진 얼굴을 어루만지고 발자국을 따라 금장대를 거닌다. 내 마음 속에는 암각화의 얼굴처럼 어머니가 깊이 새겨져 있다.

/배만식(경주시 현곡면 안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