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

이승에 계신 인간제위께!

여러분을 사후 세계로 여행시키는 저승사자 주식회사 대표이사 염라대왕이요. 회사 창립 이후 최초로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은 현 인간 세상의 사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오. 이대로 둘 경우 저승사자들이 중노동에 시달리며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며 파업을 할까 우려 때문임을 이해해주기 바라오. 잘 알다시피 금년 초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19 사태로 이곳의 저승사자들이 밤잠을 설치며 새 여행객을 맞이한다고 밤을 밝혀 일하고 있소. 근래 보기 드문 여행객의 증가로 이곳 저승사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이 없어졌다며 특단의 대책을 세울 것을 나 염라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있는 실정이라오. 물론 전 지구촌 인간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처음보다 저승여행객이 많이 줄어들고 있음은 높이 평가하고 있소. 빨리 끝나서 정상적인 업무처리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을 당부하오. 이런 저승과 이승의 협업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 인간세계에서 잊을만하면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기에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소.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저승을 찾는 기본 계약을 어기고 급행열차에 몸을 싣는 인간이 심심찮게 있는데 제발 자제해주기를 당부하오. 지구 동쪽 끝 인간들의 급행열차 탑승인원이 지구촌에서 제일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소.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어떤 연유인지 급행열차를 선탑하는 사례로 완행열차를 타야 될 승객들을 술렁이게 함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오. 저승으로의 여행은 언제 되돌아갈지 모를 여행으로 인간세상의 복잡하고 힘든 일을 잊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혹에 흔들릴 수 있을 거요. 하지만 생업을 책임진 가장이, 나라를 책임진 정치지도자가 불쑥 기약도 없이 여행을 떠나 남은 가족과 국민들이 걱정의 나날을 보내게 하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도리가 아니요.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은 기본이요 가족과 나라를 내팽개친 무책임의 극치라 생각하오. 인간 세상에는 ‘실수’라는 좋은 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신이 아니기에 인간이 자신의 기본적 의도와 달리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게 잘못을 저지를 때 짐짓 용서하고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승세계의 환상에 젖어 급행열차를 타는 것은 어리석은 처사로 밖에 볼 수 없소. 인간생활 향상을 위해 일하는 정치지도자들의 급행열차 승차는 그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음을 감안하면 급행열차 새치기 승차는 절대해서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인간들이 만든 말이 맞소. 여기 저승생활은 만만찮소. 아울러 그쪽 일부에서 급행열차 승차한 일을 미화하여 너도나도 동참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코로나 종식으로 이곳 저승사자 업무도 정상적으로 돌아갔으면 하오.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계속 밀려오는 여행객들 때문에 이만 줄이오. 명이 다할 때까지 이승에 있길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