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종 환

아프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사과꽃 피었습니다

보고 싶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사과꽃 하얗게 피었습니다

하얀 사과꽃 속에 숨은 분홍은

우리가 떠나고 난 뒤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살면서 가졌던 꿈은

그리 큰 게 아니었지요

사과꽃같이 피어만 있어도 좋은

꿈이었지요

그 꿈을 못 이루고 갈 것만 같은

늦은 봄

간절하였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사과꽃 하얗게 지고 있습니다

사과꽃 같이 피어만 있어도 좋은 꿈을 꾼 적이 있었다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날지도 모른다고, 그 사랑 간절하였다고 말하며 시인은 유수 같은 세월의 허망함을 느끼고 있다. 그대 때문에 아프다고, 보고 싶었다고 말하기 전에 사과꽃은 하얗게 피어나고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버리는 것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봄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지는 사과꽃을 보며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읽는 시인의 눈이 자꾸 먼 데를 바라보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