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7월 10일 경북대 인문한국진흥관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경북대와 전남대 인문대학이 함께하는 제2회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가 열린 것이다. 작년 10월 18일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주제로 처음 열린 학술대회에 이어 ‘기억과 기록: 대구와 광주’를 주제로 두 번째 학술대회가 열렸다.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의 거점 국립대학인 전남대와 경북대가 동서화합과 미래지향의 가치를 내걸고 개최한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

이번 대회에서는 대구와 광주의 근현대사에 나타난 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다뤘다. 그런 까닭에 대구에서 발원한 국채보상운동, 2·28 운동과 대구 3·1운동, 광주의 5·18 민중항쟁과 제주 4·3항쟁 같은 의미심장하고도 뼈아픈 한국 현대사가 소환됐다.

코로나19의 창궐에도 불구하고 70여 청중이 모여 열기를 보여주었다.

작년 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에게 지역감정을 묻다’는 주제로 발제했던 나는 올해는 대담 진행을 맡았다.

대구의 이창동 감독과 광주의 황지우 시인을 대담자로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자리. 주지하다시피 이창동 감독은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해 1997년 ‘초록 물고기’로 영화에 입문한다. 황지우 시인은 1983년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삶을 시작한다.

작년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30년 넘도록 친교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올해 두 분을 모시고 문학과 영화 그리고 광주와 대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는 터였다. 객석을 웃음바다로 인도한 것은 198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두 사람이 경험한 어긋나는 기억이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는 것이다.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던 황지우 시인의 기대와 달리 이창동 감독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던 모양이다.

문인들이 들락거리던 술집에서 황지우는 홧김에 술집의 육중한 아크릴 입간판을 이창동 부근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누구보다 자신과 뜻을 같이할 것이라 믿었던 친구를 향한 분노의 폭발이었다. 두 사람은 술집의 위치와 입간판의 색깔과 소재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기억을 소지하고 있었다.

87년 대선판 ‘라쇼몽’의 재연이 33년 만에 성황리에 이뤄진 셈이다.

두 분의 대담에서 청중은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이창동의 영화 ‘시’에서 낭송되었던 장면을 떠올리며 따뜻하게 추억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나, 우리나라 감독 가운데 이창동 감독은 영화의 서사가 가장 탄탄하다는 언명을 황지우 시인이 여러 번 강조했다. 두 분의 우정과 예술혼의 교류가 오래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철수 판화가와 도종환 시인이 친구인 것처럼 황지우 시인과 이창동 감독이 친구인 것은 한국문학과 예술에 유용한 자양분이다. 지역을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도정에 있는 우리의 문학과 예술이기에 더욱 의미 있다 하겠다.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가 계속 이어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