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가정에서 입양으로… 한 가족의 아이 사랑 이야기
위탁가정에서 입양으로… 한 가족의 아이 사랑 이야기
  • 등록일 2020.07.15 19:31
  • 게재일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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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위탁아동 보듬는 든든한 울타리 에스엠텍 임정포 대표

아이를 좋아해서 걔들을 아낄 사랑의 방식을 고민해왔다는 에스엠텍 임정포 대표.

아홉 살 아이가 옥상 베란다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가 지붕을 타고 탈출하고, 어떤 아이는 여행가방속에 갇혀서 죽어가는 패륜의 시대다. 어느 시대보다 아이들이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라고 있지만 어느 시대보다 아이들이 인륜의 정에서 떨어져 나와 학대받는 시대이기도 하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자기보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은 본능인데 이를 거슬러 살며 아이를 학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라서 우리는 사람의 이름으로 살 수 있다. 이런 패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자식을 키운다. 내 자식 남의 자식 가리지 않는 것은 아이들은 당연히 보호받으며 자라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20대 LG전자 재직시설 동료 5명과 장학회 결성

첫 나눔 이후 32년동안 교복·등록금 등 지원해 와

결혼 후 아내와 뜻모아 위탁가정 시작 후 입양 결심

미혼모·소년소녀가장돕기까지 나눔 영역 넓혀가




그러나 아이를 입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낳은 자식이 셋이나 있으면서 어쩌다 부모의 손에 자라지 못하는 아이 둘을 입양한다는 것은 보통의 어른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임정포 씨의 공장은 구미 낙동강 옆에 있다. 물이 찰랑거리는 낙동강 변을 달리다 보면 마치 비현실적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 잠시 세속의 시간을 잊게 된다.

“아이를 입양하는 일이 우리한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집사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애들도 그렇고, 모두 애를 좋아해요. 위탁가정을 했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 자연스럽게 입양을 생각했죠. 아이들도 모두 좋아했고요. 지금은 그 아이들이 우리 집의 천사에요. 걔들 때문에 웃을 일이 생기거든요. 나만 해도 그렇잖아요. 다섯 시만 되면 퇴근해서 애들 데리러 가는데, 큰 애들 키울 때는 못 그랬어요.”

그의 나눔은 젊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LG전자에 다니던 27살 무렵, 같이 회사에 다니던 뜻 맞는 5명의 친구들과 후원계획을 처음 세웠다. 이후 32년간 이어져 온 ‘밀알장학회’의 시작이었다. 조손가정 등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아이들에게 교복과 등록금을 지원했다. 고등학교까지 모두 의무교육이 되면 이후에는 대학생을 후원할 계획이다.

결혼을 하면서 아내와 보육원을 세울 계획을 했으나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보육원을 새로 설립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지면서 그 계획은 접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계획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 부부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서 위탁가정을 시작했다. 일종의 대리 양육이었다. 그러나 위탁가정을 하면서 얼마간이라도 정을 주며 키운 아이를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고 고민 끝에 입양을 결심했다. 입양을 하게 되면 더 이상 키우던 아이를 보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임정포 씨는 부자의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 덤으로 받은 것이라는 신조로 살아간다. 그에게 나눔은 생활 그 자체였다. 종교적인 영향이 크기도 했지만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의 영향이 컸다. 교사를 했던 아버지는 돌아가실 무렵 5개의 봉투를 마련해놓고 가족을 모두 불렀다. 4형제와 어머니의 몫이었다.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아가고 어머니를 잘 부양하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후 5개의 봉투는 임정포 씨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각자의 몫이 있고, 남의 몫을 탐내지 말고 내 몫이 많으면 나누어야 한다고 그는 그 5개의 봉투를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봉투가 항상 넘치므로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봉사하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답은 우문현답이었다.

“그냥 아이들이 좋더라고요. 집사람도 아이를 유난히 좋아해요. 장인어른이 시골의 목사를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장인어른 같은 목사님을 본 적이 없어요. 평생 목사를 하고 은퇴하는데 재산이 1천800만원이더라고요. 우리가 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장인어른이 살 집을 마련해 드렸죠. 우리나라 목사들이 전부 우리 장인어른 같으면 종교가 이렇지는 않을 거예요.”

사업을 시작하면서 나눔은 더 늘어났다. 그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통해 아이들을 위한 나눔을 실천한다. 하나라도 더 나누기 위해 골프도 하지 않는다.

 

 

 

“아이를 입양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가족 모두가 애를 좋아해요. 위탁가정을 했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자란 뒤 자연스럽게 입양을 생각했죠.


지금은 그 아이들이 우리 집의 천사에요.

걔들 때문에 웃을 일이 생기거든요. ”

 




“골프 치는 돈이면 아이들한테 얼마나 더 해 줄 수 있는데 골프를 쳐요. 나는 그 돈이 아깝더라고요.”

아이를 입양하면서 국내 미혼모를 돕기 시작했다. 미혼모가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으면 입양해야 할 아이도 줄어든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혼모에 대한 시선이 편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은 엄마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는 그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미혼모는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아이를 직접 키우기가 어렵다.

그의 나눔은 어려운 환경의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도 이어졌다.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년소녀가장들에게도 시선이 간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었지만 국가의 손길이 미처 가지 못하는 소외된 청소년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아이들 쪽에만 나눔의 손을 내밀다가 청소년들에게도 눈을 돌린 것이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그 일도 중요하다고 했다. 청소년들은 꿈을 가져야 할 때인데 열악한 환경은 그들이 꿈도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임정포 씨는 열심히 사업을 해서 많이 벌어야 많이 나눌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2018년에 베트남에 법인을 설립하면서 생산시설이 늘어났는데 예상치도 못한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면서 웃었다. 다행히도 베트남 법인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꼭 가야 할 일은 없지만 상황이 참 기가 막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납품하던 공장이 셧다운이 되어서 두 달 동안 꼼짝 못하고 공장을 세워 놓았는데 다행히도 7월부터는 공장을 돌리게 되어서 한숨 돌리게 되었다고도 했다.

회사가 셧다운 되어 있던 동안 그의 회사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회사자금을 보태서 통상임금의 70%를 지급하고 베트남 법인은 그 상황에서도 임금을 전액 지급했다. 베트남 법인의 임금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 되었다는 것이다. 국내회사도 통상임금의 70%를 지원하다보니 원래 월급만큼은 지급된다고 했다. 다행히 코로나가 올 조짐이 보이면서 자금 확보를 미리 해놓아서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는데 하반기에 또 코로나가 오면 걱정이란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자신이 벌어가는 것보다 직원들의 생계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이제는 회사를 운영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직원 가족들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닥쳤다는 것이다.

 

“부자의 재산은 내것이 아니라 덤으로 받은 것”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 영향으로 나눔 생활화

회사수익금 직원에 환원, 가족친화사업장 인정도

“아동학대 사례 보듯 위탁가정에 결정권 줘야”




임정포 씨는 이미 회사의 수익금은 경영자인 본인이 가져가기보다 직원들에게 환원되도록 구조화하였다. 회사의 이익은 직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 이익은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2013년 정부에서 추진하는 가족친화기업 사업장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입양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지금은 위탁가정을 새로 하고 싶어 한다. 이제는 그들 부부도 나이가 들어 갓난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보육원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위탁가정을 하면서 그 아이들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고, 부모에 대한 사랑도 일부분이나마 느껴보게 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최근의 아동학대 사례에서 보듯이 그는 친부모가 아이를 데려가는 것의 여부는 위탁가정에게 결정권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의 법률로는 가정에서 나온 아이를 위탁하더라도 친부모가 와서 아이를 데려가겠다면 속수무책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 아홉 살 아이처럼 아동학대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위탁가정에서는 그걸 막을 도리가 없다.

그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내 아이, 남의 아이가 구분되지 않았다. 아이는 어른과 달리 혼자서 자립할 수 없고, 어느 시기까지는 어른이 돌보아야 하는데 버림받는 아이, 학대받는 아이가 자꾸 늘어나는 이 사회가 개탄스럽다.

누군가는 이렇게 음지에서 아이를 돌보고 위험에 처한 아이를 걱정한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희망이 있는 이유다. 그는 아마도 그의 힘이 다하는 한 어려움에 처한 아이를 돌볼 것이고, 그 돌봄은 그의 자식들에게까지 대를 이어갈 것 같다. /글 천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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