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씨앗을 심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봄 아이의 원격 수업에서 강낭콩의 성장 과정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베란다에 다육이로만 가득 채웠었는데 올 봄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심어보고 싶다하던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아이도 좋아라고 했다. 머릿속에는 벌써 콩꼬투리 속의 콩들을 그리면서.

그렇게 심은 강낭콩은 일주일이 되지 않아 초록 초록하며 머리를 밀어 올렸다. 그 작고 앙증맞은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던 게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니 꽃을 피우고 콩꼬투리도 살짝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마다 아이와 번갈아 물을 주고 정성을 쏟은 결과이리라.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

이런 세심한 보살핌과 기다림 속에 피어나는 강낭콩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자니 문득 육아로 유독 힘들어 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기다려 주기보다는 아이보다 한 발 먼저 내딛는 성격 급한 엄마였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닐 때 시작한 방통대 공부는 늘 ‘빨리’를 외치게 했고 주말이면 시험과 출석 수업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력단절이라는 말이 싫었고 아줌마라는 말은 더 더욱 밀어내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서 자라기를 바랐고 겨울 같은 이 시간들이 지나고 새봄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무엇을 위해 가는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의문이 들면서도 말이다.

지금 강낭콩이 자라는 것처럼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주는 시간들이 부족했다. 늘 초봄에 일찍 열매 맺기를 꿈꾸며 내달리던 마음이었다. 매일 물을 주고 마음을 써 준 덕일까 지친 내 마음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이들이 ‘엄마. 사랑해’라고 하는 말, 따뜻한 손, 깔깔 웃음소리는 잊어버렸던 일상을 다시 반짝이게 했다. 서로 기다려 주고 믿어주는 시간 안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강낭콩에게 물을 주듯,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눈빛을 가득 담고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 나의 삶도 조금 더 단단해진다.

아직도 엄마 역할이 힘들지만 그 단단해진 힘으로 기다려 주고 믿어주고 지지해 주리라. 그 안에서 자라는 멋진 열매를 꿈꾸며.

베란다에는 어느 새 콩꼬투리 속의 콩들이 무르익고 있다.

/허명화(포항시 북구 아치로 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