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런 기와·멋스런 초가, 때묻지 않은 풍광은 한폭의 그림 같아라
고풍스런 기와·멋스런 초가, 때묻지 않은 풍광은 한폭의 그림 같아라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0.07.09 19:51
  • 게재일 2020.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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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⑤ 양동마을

2010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의 전경. 마을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옛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시간여행자가 된 듯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2010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의 전경. 마을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옛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시간여행자가 된 듯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본문에 앞서 먼저 사적인 경험 한 토막.

1970년대 초·중반. 영남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던 외가를 자주 찾았다. 그때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에 TV는 물론, 라디오와 전기밥솥도 없거나 드물던 곳. 모든 것이 지금과 비교하자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벽촌 구석구석까지 인터넷이 개통되고, 여든 살 촌로들도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2020년 오늘보다 매력적인 게 분명 존재했다. 동네를 걸으면 콧속으로 스며들던 향긋한 아카시아 향기, 기와를 머리에 인 고풍스런 집들이 만들어내는 풍경, 드물지 않게 멋스런 초가(草家)가 있었고, 장작을 때던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매캐했지만 더없이 낭만적이었던 마을. 이것들을 보고 느낀 기억이 4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은 위와 같은 경험을 해본 50대 여행자들에게 견딜 수 없이 아릿한 노스탤지어를 소환해준다. 어디서도 쉽게 맛볼 수 없는 느낌이다. 기자 역시 그랬다.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게 향수를 선물하는 양동마을은 젊은 세대들에겐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 나를 키워냈구나’라는 깨달음을 선사한다.

 

세계문화유산 지정 양반 집성촌
조선시대 삶의 흔적·문화 등 고스란히
수많은 고택 속 실제 거주 주민들
세계적 역사·문화마을의 일등공신
국가문화재 ‘서백당’·보물 ‘향단’ 찾아
구석구석 옛길 걸으며 몸과 마음 힐링

양동마을 초가집 지붕은 매년 겨울 잘 말린 볏짚을 이용해 새 지붕으로 바뀌게 된다.
양동마을 초가집 지붕은 매년 겨울 잘 말린 볏짚을 이용해 새 지붕으로 바뀌게 된다.

◆ 초여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을 거닐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빗방울과 이르게 찾아온 더위가 반복되던 7월 초순. 양동마을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정거장에서 마을로 가는 길. 일찍 잠에서 깬 매미가 ‘너의 유년을 기억해보라’는 듯 청량하게 울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빼어난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대를 이어 살아오는 집성촌(集姓村). 미려한 산세는 물론, 풍수학적으로도 빼어난 지세(地勢)라 예부터 ‘사람이 사람답게 살만한 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다. 인재가 모여들고, 권세가 생겨날 만했다.

2010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된 양동마을. ‘서라벌의 주요 관광자원’을 소개하는 경주시는 이 마을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마을의 주산인 설창산의 봉우리에서 네 줄기로 능선과 골짜기가 뻗어 내려와 물(勿)자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이 골짜기에 160여 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초가가 모여 있다. 조선조 과거급제자가 116명이나 나왔고, 우재 손중돈, 회재 이언적 등 명망 있는 관료와 학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주요 고택(古宅)으로는 회재 이언적에게 왕이 하사한 집 향단, 월성 손씨의 종택인 서백당(송첨종택), 회재 이언적의 부친이 기거하던 집 무첨당, 우재 손중돈이 살던 관가정 등이 있다.”

내려쬐는 햇살을 등에 지고 그 옛날 반가(班家)의 자손처럼 서두름 없는 발걸음으로 마을을 돌아봤다.

높이 솟아 우뚝한 조선의 성리학자 이언적의 흔적은 무첨당(無堂·보물 제411호)에 남아 있었다. 조선 중기에 세워진 이 건물은 종가의 일부로 손님을 접대하고, 책 읽는 공간으로 사용된 일종의 사랑채다. 여강 이씨 문중에서 1560년경 건립한 심수정(心水亭)도 톡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안타깝게도 화재로 무너진 것을 20세기 초반에 복구한 것인데, 정자와 행랑채 등을 원래 모습 그대로 살리려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가득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3호인 서백당과 보물 제412호인 향단 역시 양동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백당은 이언적이 태어난 곳이고, 향단은 조선의 양반집이 가졌던 일반적 건축 구조와 다른 형태를 지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경주와 인근 형산강을 품에 안은 형태로 조선의 청백리 손중돈이 분가해 살던 관가정(觀稼亭)과 ‘물과 같이 맑고 구름과 같이 허허롭다’는 담백한 뜻을 담아 축조된 정자 수운정(水雲亭) 또한 살피지 않으면 아쉬운 양동마을의 자랑거리다.

 

비가 내리는 양동마을의 정취를 즐기는 관광객의 모습.  /경북매일 DB
비가 내리는 양동마을의 정취를 즐기는 관광객의 모습. /경북매일 DB

◆ 시간을 잊고 천천히 돌아봐야 더 아름다운 공간

양동마을이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빛나는 문화유산’이 된 건 비단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 때문만은 아니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초가와 한가롭고 때 묻지 않은 풍광은 방문객들을 조선시대 혹은, 1960~70년대로 데려간다. 마치 타임머신에 몸을 실은 듯하다. 여기선 여타의 여행지처럼 걸음을 빨리 해 유명한 고택 앞에서 이른바 ‘인증 샷’을 찍고, 서둘러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여행 방식이 어울리지 않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리운 과거로 왔으니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게 좋지 않을까?

기자를 포함한 여행자들은 소리소문 없이 은근슬쩍 찾아온 여름의 뜨거움을 핑계로 천천히 양동마을의 진면목을 하나하나 살폈다.

흐르는 시간 따위 잠시 잊어버리고 천천히 마을의 안팎을 어슬렁거렸다. 모두가 쉽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며.

설창산과 장태골, 성주봉과 안락천에 둘러싸인 한적하고 평화로운 양동마을은 오래 전부터 인심이 좋고, 후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다.

‘경주연구’ 제21집 1호에 실린 신상구의 논문 ‘양동의 공간적 가치, 그리고 현실적 문제’는 ‘논어’ 이인편(里仁篇)을 인용해 양동마을이 인(仁·어질고 자애로움)의 덕목을 지켜낸 공동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서술이다.

“양동마을은 600여 년이라는 기간 동안 아름다운 가치(仁)를 지키며 살아온 마을이다. 600여 년 간을 한결같이 처음 마을을 형성하면서 지니고 있던 삶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지켜나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보다도 더 숭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킨다는 것에는 그만큼 어려움과 번거로움을 인내해야 하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다. 양동마을이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가치를 세계인이 인정해 주었다는 것이므로 행복한 것이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세계적인 역사·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이 마을이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감내해 왔는가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보존 가치가 있는 전통을 간직하고 이어가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위 논문의 지적은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마땅할 것으로 보인다.

경주만이 아니라 안동시, 청송군, 봉화군 등 경북 지역엔 이름난 고택과 종가(宗家)가 적지 않다. 건물 자체가 문화재나 보물인 그곳엔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그런데, 그곳들 중엔 지금도 후손들이 생활하는 집이 흔하다.

남의 집에 들어설 때는 주인에게 허락을 얻는 게 보편의 상식. 그럼에도 양해를 구하지 않고 들어가 여성들이 거주하는 안채에서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고, ‘출입 금지 표지판’이 세워진 고택과 종가의 비밀스런 공간까지 함부로 돌아다니는 행위는 한국이 관광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다행히 갈수록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로 전통문화의 속절없는 붕괴를 맛본 현대인들에게 양동마을이 주는 위로와 위안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그걸 생각한다면 보다 세련된 시민의식이 관광객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지….

 

매년 정월 대보름에 열리는 마을의 전통행사인 줄다리기를 위해 주민들이 대형 새끼줄 꼬기를 하고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열리는 마을의 전통행사인 줄다리기를 위해 주민들이 대형 새끼줄 꼬기를 하고 있다.

◆ 양동마을을 벗어나 보다 먼 곳으로 산책을 권하며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양동마을문화관에서 전시된 유물을 살펴보는 건 학생들에게 평소엔 접하기 힘든 좋은 공부가 된다.

앞서 열거한 각종 보물급 고택과 문화재인 정자와 비각(碑閣), 강학당(講學堂)을 꼼꼼하게 둘러보는 것 역시 이 마을을 방문한 여행자의 즐거움임이 분명하다. 기자는 여기에 하나를 더 권하고 싶다. 바로 1~2시간쯤을 투자해 양동마을 주변을 산책해보라는 것. 그 옛날 선비의 마음가짐과 걸음걸이로.

마을회관과 양동초등학교를 지나 이향정과 심수정을 거치면 두곡고택과 동호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지척엔 울울창창 고목이 반기는 장태골이 있다.

관가정과 향단을 뒤로 하고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면 영귀정과 물봉동산이 당신을 반기고, 조금 더 힘을 내 설창산을 향해 가면 경산서당의 미려함과 기쁘게 만날 수 있다.

근암고택, 상춘헌, 사호당, 서백당, 낙선당, 창은정사, 내곡정으로 이어지는 ‘안골 방면 산책길’의 정취도 빼어나다.

조선 성리학의 한 축을 만들어냈다는 자긍심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양동마을. 그 진가를 발견해내는 길은 여러 가지다.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양동마을 여행의 기술’을 스스로 찾아보시길.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 이용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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