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수<br>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등산길에 뭔가 이상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데도 땅거미가 내릴 것 같이 주위가 시나브로 어스름해지니 말이다. 오후 네 시가 지났지만 하지라는 날을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징표(徵標)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알아볼 마음을 먹지 않고 덤덤하게 넘어갔다. 밤에 인터넷에서 오늘 오후 부분일식이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숲속에서의 징표가 그 의미를 찾으며 의문이 풀렸다.

부분일식 징표였는데 내가 너무 무심히 지나치고 말았다는 자각이 뒤따랐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시골에는 라디오도 흔치 않았다. 날씨예측도 징표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늘, 구름, 바람, 공기의 습한 정도, 동물이나 곤충들의 행동, 몸의 반응 같은 것들을 이용했다. 방법도 어떤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 전승되는 도제제도(徒弟制度)인 풍습을 통해 저절로 습득되었다. 나아가 생활 전반에 징표와 관련되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이 스며있다. 해몽, 사주팔자 풀기, 택일, 작명, 점(占), 풍수지리 등 다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올해 내게 다가온 시대의 징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바라본다. 우선 봄꽃들이 예전과 비교해 더 화려하게 피어올랐었다. 진달래꽃, 개나리꽃으로부터 벚꽃, 라일락꽃, 이팝꽃, 조팝꽃, 장미꽃, 아카시아꽃, 찔레꽃, 인동초꽃에 이르기까지 내가 만난 꽃들은 겉모양은 확실히 화려했었다. 하지만 일부러 꽃들 근처에 가도, 가끔 꽃에 코를 대고 맡아 보아도 향기가 안 나거나, 전과 비교해 훨씬 줄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한 기후 탓인지 혹은 마음 탓인지, 봄꽃들이 무엇에 쫓기듯 허겁지겁 피어나고 지는 것만 같아 보였다.

왜 그럴까. 결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말 꽃들이 향기를 잃어가든가, 아니면 내 후각이 나이 들면서 무디어져서 향내를 맡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후자의 영향도 없지 않겠으나, 아무래도 전자에 해당하는 것 같다. 양봉하는 친척이 올해엔 꿀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식물들이 사람에게 보내는 징표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리우협약 등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촌의 인식은 제법 오래 된듯하나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이 시행된다는 소식은 별로 듣지 못했다.

해로운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일부 사람의 흡연, 과음, 마약 투여 같은 습관처럼 이 시대 지구촌은 물질문명의 편리성에 중독되고 만 것은 아닐까. 생명의 어머니 지구가 곳곳에서 이상기상 현상이나 지진, 동물, 식물, 곤충 나아가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등을 통해 신음의 징표를 내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책임을 져야 할 우리 인간은 외면하며 사는 현실이다. 물질문명에 유착한 정치적 경제적 패권, 자국 이기주의, 거대 자본의 횡포 같은 욕망에 최면 되어 있다. 현 인류문명은 과녁도 없이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화살이 우리를, 지구촌을 어느 과녁에다 맞출지 두렵기만 하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이전 세대들만 하더라도, 농촌에서는 전 근대적 농사일을 하며 자연 친화적 또는 로하스(LOHAS)족 같은 삶을 경험했다. 보릿고개의 고단하고 힘든 시기였지만 자연을 알고 자연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기에, 비록 엥겔지수는 높아도 행복도(幸福度)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았었다 싶다. 어촌이나 산촌도 농촌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품앗이를 기반으로, 한 동네가 한 가정처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사는 공동체였기 때문이리라.

손자가 둘이다. 맏이 가정의 세 돌을 앞둔 큰손자, 둘째 가정의 갓 돌 지난 작은 손자가 그들이다. 해맑게 자라나는 손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에서 또 하나 가장 행복한 기간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전에 느끼지 못하던 불안과 걱정이 앞선다. 자연과 국가사회의 시대 징표를 바라보면, 아이들의 미래가 어찌 될지 좌불안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환경 변화에다 정권의 무모한 좌편향 정책, 북핵, 코로나19 등에 볼모잡힌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어서다. 만일 어버이들의 잘못으로 저 아이들이 불행해진다면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부디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주기를 정부와 정치권에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