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경주시청팀 소속 시절 감독과 ‘팀닥터’로 불린 가짜 운동처방사 등의 가혹 행위에 시달리던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최 선수가 그동안 요로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뒷얘기에는 가슴이 아프다. 체육계의 해묵은 폭력풍토, ‘안’ 고치는 건지 ‘못’ 고치는 건지를 다시 묻는다.

최 선수가 남긴 훈련일지와 녹취록은 체육계의 고질적 갑질과 폭력이 여전하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해자들이 신발, 각목 등으로 수시로 때렸다는 최 선수를 비롯한 피해 선수들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체중조절을 못했다며 사흘간 굶기는가 하면 탄산음료 주문을 이유로 20만 원어치 빵을 강제로 먹이는 식고문(食拷問)까지 가했다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지난해 1월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코치의 폭력·성폭행 사건을 폭로한 후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선수 인권침해 근절 대책을 내놓는 등 요란 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유사한 비극이 재연됐다. 정부의 대증요법 수준의 대책은 체육계에 만연된 폭력문화를 개선하는 일에 닿기는커녕 ‘소나기 피하기’식 기회주의적인 차원에서만 다뤄졌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정치권이 뒤늦게 나서서 ‘희생양 찾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폭력 행위를 리드한 감독, 자격증도 없다는 팀닥터, 경주시장에다가 협회 관계자들을 차례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대한체육회 회장까지 책임론이 쏟아진다. 거명되는 사람들을 두둔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그게 정말 문제의 핵심일까.

우리의 전통적인 ‘엘리트 체육’이 드디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어쩌다가 그길로 들어선 선수들에게 다른 길이 전혀 없다는 점이 약점이 되고, 지도자들은 성과지상주의에 찌들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냥 두고 무슨 해법을 찾을 것인가. 우리나라 체육 정책 전반에 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다다랐다. 근본 처방을 찾을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위정자들의 근시안적 인식이 개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