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경동화작가
최미경
동화작가

“넌 대체 꿈이 뭐니?”라는 남편의 질문에 큰애가 머뭇거렸다.

그 사이 셋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직업을 말하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투덜댔고 둘째는 눈을 한참 굴리더니 셋째가 뱉어놓은 몇 개의 직업에 토를 달았다.

“우리 선생님이 그러던데 예술가, 라는 직업은 사라질 수도 있다던데.”

둘째의 말에 남편과 첫째와 셋째가 나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진짜?”라며 내가 되묻자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신들의 대화 내용으로 이내 돌아갔다. 직업에 대한 고민, 삶의 방향에 대한 근심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커서 뭐 되고 싶어?”라는 식의 질문이 상당히 불편했다. 그 질문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직업이 20년 후에도 존재할지 장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당장 나만 하더라도 “글 그만 쓸래!”라고 내일 당장 두 손 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른인 나도 아직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헷갈릴 때 있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내 삶이 어떻게 여기까지 굴러왔는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은 비현실주의자 혹은 이상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험난하고 다사다난한 시대를 살금살금 건너며 내가 겨우 알아낸 건 정말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것 뿐이다.

6개월 전만 해도 팬데믹으로 발칵 뒤집어질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환경문제 먹거리문제가 늘 따라다녔지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잠금상태가 되리라고 설마 짐작이나 했겠는가.

코앞까지 왔다는 4차 산업혁명시대도 두렵고 전염병도 무섭고 엄마라는 자리도 무거운 나는 남편과 아이들의 대화에서 슬그머니 빠져서 애꿎은 TV리모컨만 요리조리 돌렸다. 그러다 모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소라가 버스킹하는 모습을 보았다.

“노래를 혼자 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누군가 들어주고 이해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야 그 공간이 같은 마음으로 이뤄져서 그 마음이 커지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을 같이 하면서 나누는 것이 노래이고 예술이라는 그녀의 말에 가슴의 온도계가 뜨겁게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공연과 전시가 미뤄지고 잠정연기되면서 많은 예술인들이 작품을 선보일 곳을 잃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예술인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렸던 관객도 마음 둘 자리를 잃은 것이다. 위로, 카타르시스, 심리적 보상…, 눈으로 가늠할 수 없지만, 계산기로 두드려볼 수는 없지만 예술은 우리에게 분명 무언가를 준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보다 정교하게 작품을 구성하고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음악을 완성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모방하는 시대가 곧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예술가와 관객이 나누는 뜨끈뜨끈한 관계, 이 관계의 온도를 최첨단 기술이 이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믿기로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이 시대를 조심조심 건너며 그래도 예술이 우리 관계에 버틸 힘을 준다는 것을 끝까지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