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령사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삼층 전탑. 불령사는 청도군 매전면 용산 3길 99-8에 위치해 있다.

여기저기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는 효양산 초입에 차를 세우고 운동 삼아 비탈길을 오른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불령사가 보인다. 좋은 친구와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은 물리적인 거리조차 단축시킨다.

불령사는 신라 선덕여왕(645년)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중간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고 1912년 봉주 스님이 중창했지만 허물어져 1985년 지선 스님이 요사채와 산신각을 짓고 2000년에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가파른 계곡을 따라 오밀조밀 전각이 들어선 불령사는 시멘트 다리가 일주문인 셈이다. 낯선 소리에 순한 개 두 마리가 짖고 주지 스님이 소탈한 차림으로 나와 인사를 건네신다. 원효대사가 수행하던 동굴과 범바위, 절의 자랑거리인 전탑까지 하나하나 안내하며 설명해 주신다. 원효대사의 일체유심론이나 무아사상, 대승기신론, 요석공주의 지아비를 향한 사랑까지. 스님은 원효대사에 대한 존경심과 절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문양이 새겨진 벽돌로 만든 전탑을 보러 가는 산길에는 바람과 누워 있던 고요가 몸을 일으키고, 천불천탑이라 불리는 삼층탑은 지방문화재답게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서서 산새를 기다린다. 허리 굽혀 부처님과 전각 들이 새겨진 문양들을 찬찬히 살펴보지만 세월의 깊이는 얕고 푸르기만 하다.

역사적 가치를 담고 있는 벽돌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대부분 새로 제작하여 쌓은 것으로 3층이던 탑은 5층으로 변하고 2009년에 해체하여 다시 3층으로 보수하였다고 하니 그 원형이 궁금하다. 일제강점기 때 찍은 흑백 사진이 자꾸만 아른거리는데 탑은 맹숭한 낯빛으로 말이 없다.

스님은 열흘 만에 맞는 불자인 우리가 반가운 모양이다. 털털한 입담과 말투로 스산한 추억을 재미있게도 풀어내신다. 흔들리며 흘러가는 계곡물처럼 스님의 말씀은 꾸밈없고 거침이 없다. 권위적이고 형식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스님 같지 않은 스님의 말씀이 조용히 바위가 되었다가 시원한 폭포수가 되기도 한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전탑을 지키는 참나무들과 산새들도 귀를 세운다.

“발 조심하세요! 발 조심!”

무심코 발장난을 하는데 스님이 소리치신다. 놀라 발밑을 보니 개미떼가 무리지어 이동 중이다. 작은 생명까지 놓치지 않는 스님의 산중 생활이 꽃처럼 환하다. 아주 소소한 것이 스님을 다시 보게 만든다. 말씀은 투박하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부처님의 말씀 실천하며 살아가는 든든한 참나무 같은 분이리라.

가난한 시절 뱀을 잡아 모은 돈으로 학교를 다녔다는 스님, 아직까지 기도를 할 때마다 기억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참회하게 된다는 서늘한 말씀들이 법문처럼 가슴에 꽂힌다. 나는 얼마만큼 나 자신도 모르는 죄를 짓고 살아왔을까? 꿀벌들이 참나무 가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느라 허공을 털어내는 명징한 소리들과 마을의 진돗개에게 물려 한쪽 다리를 절면서도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강아지 발걸음에 실린 설렘들, 삼성각 벽에 그려진 호랑이의 눈동자에 서려 있는 죽은 이의 영혼들까지, 고요한 절집에도 보이지 않는 관계들이 저마다 얽혀 활기차다.

“젊음도 잠깐이에요. 나이들 수록 베풀며 살아야 돼요.” 격의 없이 던지는 스님의 말씀이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이 되어 내 안으로 떨어진다. 나도 모르게 몸과 입, 행동으로 쌓은 카르마들, 여전히 욕심에 휘둘려 부질없는 일에 집착하는 아둔함이 생채기를 낸다.

대웅전 법당에서 백팔 배하는 나를 위해 스님은 일일이 법당 문들을 활짝 열어주시고 법구경까지 틀어주신다. ‘언제나 남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어라. 남에게 베푸는 보시보다 더 큰 선은 없다’ 향기로운 법구경 말씀들이 숲과 계곡, 마음까지 촉촉하게 적신다. 불자가 아닌 친구는 참나무 그늘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나의 기도는 누군가의 수고로움 속에서 행해지고 있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하던 청소를 멈추고 시간을 내어주신 주지 스님, 흔쾌히 불령사까지 따라나서 준 친구가 소중한 탑이 되어 오늘을 밝힌다. 불령사가 불자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되기를, 친구의 마음에도 법구경 한 구절이 바람처럼 머물다 가기를 기도한다. 속세를 등지며 살아간다고 해서 저절로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있든 나의 마음이 결과를 만든다.

부담 없이 찾아간 사찰에서 수행과 명상이 얼마큼 내 삶에 자리하고 있는지 점검해 본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마음들, 화가 나거나 누군가를 미워하고 사랑하는 일조차,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 마음을 제대로 관찰하며 살리라.

“배가 고프면 가다가 매운탕 한 그릇 사먹고 가세요. 내 배를 채워준 물고기를 위해 나무아미타불 정도는 해주고, 뭐든 맛있게 먹으면 돼요.”

농담처럼 던지는 스님의 말씀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생활 속에서 ‘나무아미타불’ 염불 정도는 놓치지 말고 살아가라, 염불을 읊다 보면 일상은 조금씩 변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리라. 붓다의 말씀대로 사는 일은 아주 쉬울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자주자주 길을 잃는다. 애석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