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최근 확인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TK(대구·경북)의 여야 대권 주자들의 엇갈린 반응이 눈길을 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은 “화해의 손길엔 적극 협력하되 도발은 강력히 응징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유승민 전 의원은 “북핵은 남한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착각에 빠져 (문 대통령이) 북한에 굴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냉탕-온탕을 오가는 분탕질 바람에 6·25전쟁 70주년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지나갔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김여정이 앞장서서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온갖 험구들을 쏟아내며 시작됐다. 남북 긴장 고조는 우리의 천문학적 수치의 혈세가 투입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도하게 폭파하는 시점에 최대치로 끌어올려 졌었다. 그러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 북한은 모든 도발 책동을 돌연 중단했다. 과연 수령 1인 통치 독재국가의 전형적인 행태가 또다시 드러난 셈이다.

그런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이 펴낸 자서전 한 권이 여론을 들쑤시고 있다. 그의 자서전 내용에 언급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일종의 평가절하를 놓고 야당은 ‘그러면 그렇지’하는 심사로 내막을 밝히자고 파고드는 중이고, 여당은 볼턴을 잡놈 취급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볼턴의 주장을 종합하면, ‘북미 정상회담’은 애초부터 문재인 정권의 실속 없는 작품이고, 문 대통령이 중간자 역할을 하면서 양쪽의 뜻을 너무 낙관적으로 전달하는 바람에 파탄이 났다는 것이다.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문 대통령이 부득부득 갔다는 폭로는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대목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북핵 폐기’다. 우리 국민은 물론, 온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숙제는 ‘북한 비핵화’인데 그게 1인치도 진전되지 않았다. 북한은 핵을 완성할 시간을 넉넉하게 벌었고, 실질적 핵보유국이 돼가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워졌다.

굴종으로 유지되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북한 비핵화’라는 희망고문에 순치된 국가안보와 무장해제 상태에 접어든 국민 정서는 대한민국의 존폐문제에 직결돼 있다. 이제 ‘북핵 폐기’는 환상으로 끝났고 ‘핵 균형’ 같은 수단만이 남게 된 형국이 아닌가 느껴진다.

‘강력한 국방력’이나, ‘한미동맹 강화’를 말하면 무조건 수구꼴통 취급하는 진보 인사들의 편견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위정자들은 이제 국민을 ‘북한 비핵화’라는 희망고문 속에 더 이상 가두지 말아야 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말처럼 김정은은 핵을 폐기할 의사가 조금도 없는 게 분명하다. 힘으로 지키는 평화만이 참된 평화다. 상대방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낭만적 평화론은 백해무익할 따름이다. 김부겸의 말과 유승민의 말이 모두 ‘평화’를 염원한다는 차원에서 같은 말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