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 시인
김현욱 시인

괴로움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상태. 또는 그런 느낌’이라고 나온다. 유의어가 재미있다. 쓰라림, 어려움, 고통, 고충, 아픔, 고초, 곤란, 고(苦)가 괴로움의 비슷한 말이다. 괴로움의 옛말은 ‘고모’, 준말은 ‘괴롬’이다. 한설야의 소설 ‘황혼’에 “괴롬 많은 그 길을 걸어갈 근기가 있을까?”라는 예문이 나온다.

뜬금없이 괴로움 이야기를 꺼낸 건 얼마 전에 읽은 기사 때문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는 내용이었는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30세대의 공황장애는 2015년 3만1천674명에서 2019년 6만1천401명으로 93.8% 증가했다고 한다. 우울증도 2015년 12만3천339명에서 2019년 22만3천71명으로 80.8% 늘었고, 조울증은 2015년 2만6천915명에서 2019년 3만8천825명으로 44.3% 느는 등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단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을까봐 병원을 찾지 못하는 숨은 수까지 합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 그러한 상태를 우리는 ‘괴롭다’라고 한다. 통계만 놓고 보자면, 우리 주위에 괴로운 사람이 너무 많다. 질리언 웨어링의 사진 ‘나는 절망적이다’를 보면 말쑥한 양복차림의 청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보고 서 있다. 누구라도 호감이 가는 얼굴이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린 종이에는 “나는 절망적이다”라고 쓰여 있다. 어리둥절하다. 그의 밝은 모습과 그가 들고 서 있는 글귀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다. 사진작가 질리언 웨어링은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인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은 같지만 겉모습과 속마음은 이토록 다르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않는가.

나도 한때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움의 나날을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받아들이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나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 아프다고 표현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아프면 드러내야 한다. 상처는 숨기면 곪는다. 곪고 곪으면 정말 방법이 없다. 도려내는 수밖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깨달음. 감각적 욕망을 향해 미친 듯이 쫓아다니며 자기 자신을 소진하던, 어리석은 ‘나’를 이제야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아프고 괴로웠던 게 내 인생의 전화위복이었는지 모르겠다. 크게 아프면 크게 성장한다. 2천500년 전에 괴로움의 실체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유일한 길을 깨달은 사람이 있다. 붓다의 수행과 깨달음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이 핵심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감각적 욕망은 행복이 아니고 괴로움의 씨앗이다. 불교는 극락왕생이나 부처님 가피를 바라는 종교가 아니다.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삶이 괴롭다면,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 수행을 시작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