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지음·더봄출판사 펴냄
역사·1만8천원

정조의 표준 영정. /더봄출판사 제공

우리 역사상 최고의 개혁군주로 평가받는 정조(正祖)는 신궁(神弓)이었다. 그가 활을 쏠 때면 50발 중 49발을 쏘아 명중시켰다. 그런데, 마지막 한 발은 과녁을 향해 쏘지 않고 허공으로 날리곤 했다. 50발을 모두 명중시킬 수 있었으나 스스로 겸손하기 위해 마지막 한 발을 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는 주역(周易)에 통달했던 정조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주역 점(占)을 칠 때는 보통 시초(蓍草)라고 하는 50개의 산가지를 사용하는데, 그중 1개는 태극(太極)을 상징해 사용하지 않고 49개의 산가지만 가지고 주역 점괘를 뽑는다. 그리고 그 점괘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변화의 숨은 뜻을 찾아낸다. 이에 착안한 정조는 1발의 화살을 제왕의 산가지로 여겨 아예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의 제22대 국왕(재위 1776~1800년)이었던 정조는 개혁과 겸손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대표적 지도자였다. 정조 전문가인 김준혁 한신대 교수는 신간 ‘리더라면 정조처럼’(더봄출판사)을 통해 이 ‘정조의 리더십 코드 5049’의 비밀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정조 리더십은 비단 봉건왕조 시대에 통용됐던 군주의 리더십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충분히 응용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정조의 표준 영정.  /더봄출판사 제공
정조의 표준 영정. /더봄출판사 제공

△끊임없이 단련하고 훈련해 스스로 군사(君師)로 자리매김하다

군주의 사적 행위는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 해도 곧 공적 행위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조는 말과 행동에 있어 매사 신중하고, 늘 근엄함을 잃지 않았다. 정조는 신료들에게 늘 ‘사중지공(私中之公), 손상익하(損上益下)’를 강조했다. 사적인 일로부터 시작하지만 반드시 공적인 것으로 연결되도록 강조했고, 윗사람은 덜 가져도 아랫사람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공적인 일을 하면서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익을 얻었을 때 함께한 이들에게 고른 분배를 하지 않고 독식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조는 국왕으로서 사적인 이익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공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며, 누구보다 따스하면서도 친인척과 측근들의 잘못은 추상같이 다스리는 위엄도 보여줬다. 특히 그는 군주로서 엄청난 양의 정무를 소화하면서도 학문에 소홀하지 않았고, 신체 단련도 충실히 했다.

또한 불교와 도교, 그리고 서학(西學)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배척당하던 그 시대에 정조는 성리학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상은 아니라고 단호히 이야기했다. 그러한 정조의 정신은 보다 높은 단계의 실학으로 발전했고, 정조시대 조선의 문화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 길을 나서서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스스로 공부한 의학지식을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며, 외세의 침입을 막고 강력한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병법과 무예를 익혔다. 이러한 솔선수범과 소통의 리더십은 관료와 양반사대부 그리고 백성들을 감동시켜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경문화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학문을 좋아했던 정조의 시문집 ‘홍재전서’(100책).  /더봄출판사 제공
학문을 좋아했던 정조의 시문집 ‘홍재전서’(100책). /더봄출판사 제공

△정조 리더십의 비밀은 모든 백성들을 위한 위민사상에 있다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라는 뜻이다. 즉 백성은 임금을 떠받들지만 임금이 잘못하면 백성들이 임금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정조는 항상 백성을 물로 보고 임금을 배로 보았다. 그래서 정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이 어느 천은 작은 것이기에 작게 비추고, 어느 강은 큰 것이기에 더 많이 비추어서는 안 된다.” 국왕이 힘 있고 돈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고,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에게는 적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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