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대수필가
윤영대
수필가

6월 초에는 집안에 큰일이 있어서 시골집에 자주 가지 못했다. 시골이라지만 포항시 북구 기계면 외곽에 마음의 쉼터로 마련한 조용한 한옥이다. 마당은 잔디가 곱게 깔렸고 담을 따라 아름드리 돌로 아름답게 둘러싼 작은 화단에는 많은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어저께 비가 온 후, 단오날도 다가오는지라 마음도 정리하고 집도 살필 겸 갔었다. 더위가 성큼 온 듯한 날씨에 읍내를 지나 작고 조용한 마을의 골목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은 잡초들의 환영이 눈에 띈다. 좁은 골목 끝 내가 손수 만든 나지막한 대문 앞에 서니 빨간 줄장미와 분홍색 찔레꽃이 반긴다. 마당에 들어서면 앞뜰의 소나무 순은 쑥 자라있고 집 뒤의 뽕나무, 대나무들이 엄청난 잎새들을 자랑(?)하며 지붕을 덮고 있다. 차를 마당 한편에 세우고 제일 걱정이었던 채소밭부터 살피니 다행히 고추와 상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마당 한쪽에 취미 삼아 일군 서너 평 정도의 밭에 비료도 많이 주지 않았는데 잘 자라주어 고마웠다. 그런데 밭이랑에는 흙이 보이지 않고 무언가 풀들이 가득하다. 가까이 가보니 채소밭의 골칫거리 쇠비름과 바랭이가 신나게 번지고 있었다. 아! 이놈들부터 뽑아야겠다 싶어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제부터는 잡초와의 전투다.

우선 고추밭 이랑부터 호미를 들고 들어가 낮게 기어 다니는 쇠비름을 뽑았다. 비 온 뒤라 쉽게 뽑혔다. 한 소쿠리 정도 뽑아버리려니 작고 두툼한 잎과 튼실한 줄기가 어렸을 때의 밥상이 생각난다. 돼지풀이라고 하는 쇠비름은 ‘밭에서 나는 생선’이라 할 만큼 오메가3가 풍부하여 많이 먹으면 생명이 길어진다고 장명초(長命草)라고 한단다. 옛날에는 봄여름 나물 무침으로 먹었지만 지금 우리 집에는 아직 못 먹는 잡초이려니…. 또 종기 치료에도 좋고 끓인 물을 바르면 습진과 무좀에도 좋다고 하여 약으로 보관하려 하다가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바로 옆에는 맑은 햇살을 받아서인지 상추가 풍성하게 잎을 펼치고 있어 아내가 즐겁게 한 잎 한 잎 따고 난 후, 나는 고랑 사이에서 줄기의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랭이를 뽑았다. 마당 잔디 사이에 가끔 듬성듬성 나 있는 것은 잘 뽑히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푸석한 밭 흙에서는 쉽게 뽑혀 다행이다. 그야말로 잡초의 대명사인 바랭이는 한국 원산인 한해살이풀로 가축의 사료로 쓰이지만 눈과 귀를 밝게 하고(明耳目) 폐를 맑게 하는 약재로도 쓰인다고 한다.

허리 굽혀 땀 흘려 다 뽑고 나서 좀 쉬려고 마루에 앉으니, 앞쪽 화단의 낮은 키 나무들 사이에 튼실한 줄기와 거친 잎 위에 핀 노란색과 보라색 꽃이 눈에 들어온다. 몸통은 닮고 얼굴은 다른 엉컹퀴와 방가지똥이다. 꽃은 둘 다 수수하게 예쁘고 잎에는 가시가 있다. 예쁜 자주색 꽃을 피운 엉컹퀴는 잎의 가시에 찔리고 고약한 느낌이 나는 이름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잎도 줄기도 비슷하고 가시가 있는 방가지똥은 민들레와 닮은 노란색 꽃을 야생화 사진을 찾아보고 이름을 알았다. 또 ‘피를 멈추고 엉기게 하는 풀’ 엉컹퀴는 줄기 속이 차 있고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관절염에 좋은 약용으로 쓰이며, 방가지똥의 줄기는 비어있고 어린잎은 역시 나물로 먹고 간에 좋은 약재로 쓴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맞은편 화단의 모과나무 앞쪽에는 뽑히지 않고 쭉쭉 자라고 있는 참나리 한 무리가 있다. 점박이 주황색 꽃잎을 뒤로 말아 재껴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이 백합 닮았고 뿌리는 약재로 쓰인다기에 야생화의 자격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이렇듯 텃밭에 성가신 잡초도 화단에 제멋대로 자리 잡는 야생화도 깨끗한 정원에는 필요 없는 식물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몸을 살리는 유용한 약재라고 하니 쓸모없는 풀과 꽃들에게도 각자의 존재 가치가 있으리라.

골목 안쪽부터 집 안뜰까지 자라는 돌나물-내 어릴 때는 돈나물이라 했다- 은 봄에 뜯어 생나물로 무쳐 먹었고, 화단 귀퉁이에서 무릎까지 자란 인진쑥은 한 움큼 잘라서 묶어 황토방 벽에 걸어두었다. 향기도 있지만 벌레들이 싫어한단다. 뽑아내는 잡초들도 이름 모를 야생화들도 그들이 품고 있는 약용으로서의 가치로 보면 모두 소중하다. 나의 시골집 마당은 잡초들로 가득한 작은 한약재 텃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