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홀로 떠난 여행에서 알게된 것들

숙소에서 바라본 스톡홀름 시내 풍경.
숙소에서 바라본 스톡홀름 시내 풍경.

◇ 오슬로에서 마주친 난민들

오슬로 시내에 나갔다가 온가족이(난민인 듯했다) 구걸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어디서나 여성과 아이들은 가난이나 차별 앞에 가장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난민들이 계속 증가하고 유럽 대부분 국가들은 그들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반난민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유럽 내 극우정당들은 국민들의 난민 혐오 정서에 기대 세를 불리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정세가 안정되지 않는 이상 유럽도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히 분쟁이나 정치적인 문제로 고향을 떠나는 난민뿐만 아니라 미래로 갈수록 기후 문제로 인한 난민도 늘 수밖에 없을 테니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불황이라도 찾아온다면 극우 정당이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오슬로 시내는 주말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노르웨이 궁전에서 시청 광장으로 이어지는 거리만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공원에서 반라로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겨울이 길고 맑은 날이 드문 북구에선 저렇게라도 햇볕을 쬐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모양이다. 숙소 근처 공원을 지나다 해수욕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P선생님께서 손수 밥과 수육까지 하셨다. 현지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으셔서 여행하는 동안 대부분 직접 요리해서 드셨단다. 얼마 만에 먹는 밥인지 모르겠다. 대부분 빵과 치즈와 우유와 커피로 끼니를 해결했는데. 점심과 저녁까지 선생님과 함께 식사했다. 선생님께 쌀과 된장을 조금만 얻어 가기로 했다. 선생님과 렌터카 회사에 다녀왔다. 유럽에서만 판매되는 현대 i20을 빌려 운전하고 왔다. 하루 렌트 비용이 우리 돈으로 약 10만원. 수동 기어를 다뤄본 적이 오래고 네비게이션 보는 것이 익숙지 않다며 회사에서 숙소까지만 운전을 부탁하셨다. 함께 여행하던 분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일주일 동안 혼자 운전해서 다녀야 할 텐데 걱정스러웠다. 노르웨이에서 여행을 끝내고 아이슬란드까지 가실 모양이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선생님께 쌀과 된장을 얻고 오슬로를 떠나 스톡홀름으로 출발했다.

 

유럽 대부분 도시에서 한적한 골목길에 오토바이를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 스톡홀름에서도 마찬가지.
유럽 대부분 도시에서 한적한 골목길에 오토바이를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 스톡홀름에서도 마찬가지.

◇ 오슬로를 떠나 스톡홀름으로 향하다

스톡홀름에 들어올 때까지 내내 비가 왔다.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고 비까지 내리니 비옷을 입고 있는데도 한기가 스몄다.

어제 날씨를 확인했을 때만 해도 분명 흐리다고만 했는데 500킬로미터 넘게 달리는 내내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스톡홀름에 도착할 땐 온몸이 젖은 상태였다. 10시간 넘는 주행에는 비옷도 무용지물. 비를 맞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동안 아름다운 풍경에 취했다. 비를 맞는 것쯤은 별 것 아니었다. 숲에서 숲으로 달리는 동안 거울 같은 호수와 강을 만났다. 내가 보았던 호수와 강은 모두 베네른 호의 자식들이었겠지. 오가는 차들이 거의 없는 고요한 스칸디나비아 숲길을 헬멧 쉴드에 흐르는 빗물을 닦아내며 홀로 달리는 경험은 무엇으로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스톡홀름에서 이틀 묵고, 이제 곧 헬싱키를 지나 다시 러시아로 넘어갈 예정.

홀로 떠나야 아프고 약한 곳이 어딘지 확실히 드러난다. 의지할 곳이 있거나 관계가 이어져 있을 때 숨어 있던 감정이나 욕망이 온전히 혼자일 때 날 것으로 또렷이 보인다. 그걸 다스리는 것은 나중 문제고 우선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도 가끔 외부와 단절된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라는 그물에 갇혀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써야 하고 나중에는 다시 채울 기회조차 놓치고 만다. 물론 관계에서 힘을 얻는 사람도 있다. 그건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듯하다.

스톡홀름에 도착해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숙소 주변을 빙빙 돌았다. 눈치껏 오토바이를 세워둔 곳이 있으면 같이 두었을 텐데 어떻게 된 건지 길에 오토바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건물 뒤쪽에다 세워두었다. 무료 주차장이 있는 숙소는 시외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시내에 있는 숙소는 주차비를 내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으니 ‘공짜’로 주차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동네 골목길을 도는경우가 종종 있다.

덕분에 이곳 분위기가 어떤지 자연스럽게 살펴보게 된다.

말뫼도 오슬로도 이곳 스톡홀름도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저녁 6시 이후론 가게 문을 닫은 곳도 많고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북유럽 사람들은 다들 집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걸까, 아니면 저녁과 밤의 시간대를 우리와는 다르게 대하는 태도와 문화가 있는 걸까 궁금했다. 만약 우리에게 밤 10시까지도 태양 빛이 어스름하게 남아 있다면 ‘열심히’ 일하거나 즐기는 사람이 많을 텐데. 오늘도 어제처럼 결국 비를 맞고 말았다.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스톡홀름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어제 비를 맞은 휴대폰이 혼자 꺼지고 켜지고 반복하더니 배터리를 모두 쓰고 다시 충전하고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스톡홀름과 헬싱키를 잇는 페리.
스톡홀름과 헬싱키를 잇는 페리.

◇ 북유럽의 고요한 숲과 호수를 가로질러 발트해로

휴대폰 인증 문제 때문에 페리를 예약할 수 없어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대신 예약해 달라 부탁했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까지 오토바이를 실어가는 최저 비용은 우리 돈으로 약 125,000원. 일찍 예약하거나 시즌에 따라 가격이 다른 모양이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까진 뱃길로 약 500킬로미터. 페리로 투르쿠로 가서 내륙으로 약 200킬로미터 달리는 방법도 있다. 오후 4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9시 30분에 도착한다. 차량으로 페리를 이용할 때는 터미널이 아니라 차량 게이트가 따로 있다. 터미널에 가서 예약했다고 티켓을 받으려고 하니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직원이 친절하게 지도를 출력해서 길을 알려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두 사람 뿐이었고 자전거 여행자들이 많았다. 한 자전거 여행자의 짐 꾸림이 내가 보기엔 딱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둘을 캐리어에 태우고 전기 자전거로 달리는 엄마도 봤다. 생활 자전거에 배낭만 질끈 묶고 일상복으로 배를 타는 이도 있었다. 그는 헬싱키가 집일 수도.

온갖 종류의 자전거에 짐을 꾸려 싣고 떠나는 사람들을 보고 다음 장거리 여행은 자전거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당분간은 불가능한 일인 듯싶다.

3년쯤 있다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땐 정말 집에서 쫓겨날 수도. 발트해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헬싱키에서 하룻밤 보내고 다시 페리를 타고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갈 생각이다.

 

발트해를 건너는 동안 섬에 작은 오두막이 있는 풍경을 여럿 봤다.
발트해를 건너는 동안 섬에 작은 오두막이 있는 풍경을 여럿 봤다.

헬싱키로 페리로 넘어오며 소파에서 쪽잠을 잤더니 온몸이 뻣뻣.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객실, 식사 옵션을 모두 뺀 덕분이다. 객실을 예약하지 않은 노련한 여행자들은 미리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소파를 선점하고 나처럼 뭘 잘 모르는 여행자들은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곳으로. 원형 소파라 잔뜩 웅크려야만 자야만 했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오는 중에 마리에함 섬에 잠시 기항했다. 항구로 들어가는 걸 갑판에 나가 구경했는데 이렇게 큰 배가 바위섬들을 아슬하게 스쳐가며 항해하는 것이 놀라웠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듯한 작은 섬에도 집이나 건물이 있었다. 별장 같은 곳일까, 아니면 어부들이 사용하는 임시 거주지일까 궁금했다. 오는 동안 요트나 보트, 여러 작은 배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걸 보았고 저들은 저 작은 섬에도 쉽게 들락날락 할 수 있을 테니 음식과 연료만 충분하다면 저런 곳에서 한철 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듯하다. 작게라도 숲이 있고 낚시 실력만 있다면 더 오래 있을 수도.

헬싱키에 도착하니 많은 경찰이 도로에 경비를 서고 있었다. 무슨 큰 행사를 앞두고 있는 듯했다. 희한하게 축제나 행사를 잘 피해서(?) 다니고 있다. 축제 기간이면 잠잘 곳을 구하기도 힘들고 오토바이를 주차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 나로선 피하는 게 오히려 득이다. 체크인 날짜를 어제로 예약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같은 침대 앞에서 나와 다른 여행자가 짐을 내려놓고 멀뚱하게 있었는데 숙소에서 보낸 메일을 확인하니 내 잘못이었다. 직원이 나를 원래 예약했던 방보다 더 나은 곳으로 배정해주었다.

그 친구보다 아마 내가 훨씬 나이가 들어 보여 배려해준 것이리라. 아니면 청소가 끝날 때까지 묵묵하게 기다려준 덕분일 수도. 숙소 뒤편 숲길을 걷다 축구장에서 뛰어노는 친구들을 한참 구경하고 들어왔다. 헬싱키는 정말 점만 찍고 간다. 시내 구경은 내일 여객선 터미널에 주차해놓고 다녀오기로. 내일 오후 페리를 타고 탈린으로 간다. 북유럽에선 모든 것이 비싸니 지출을 줄이는 데만 신경 쓰고 있다. 이제 곧 러시아로 넘어가니 비용 걱정은 한시름 놓을 듯하다. /조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