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사전에 삐라는 전단과 같은 의미이나 북한어라 설명하고 있다. 우리말로 쓰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 밝히고 있다.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전단 또는 광고용 포스터라는 뜻의 영어 표현인 빌(bill)에서 나왔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빌이 일본식 발언인 삐라로 변형돼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삐라는 전단의 성격이지만 주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될 때 부르는 표현이다. 상업용 전단지와는 어감부터 다르다.

삐라 살포의 시초는 16세기 종교개혁 중 교황을 고발하는 그림이 뿌려진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심리전 목적으로 전선에 뿌려져 적의 심리를 교란한다 하여 종이폭탄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우리나라도 해방 후 남북이 극심한 이념대립을 하면서 삐라가 많이 활용됐다. 특히 6·25전쟁 중에는 남북이 심리전의 매개로 사용하면서 엄청난 양의 삐라가 뿌려졌다. 체제의 우월성, 전쟁의 당위성 등을 주 내용으로 삼았다. 남북은 같은 민족이어서 언어나 문화적 장벽이 거의 없다. 그래서 당시 뿌려진 삐라는 약발은 잘 받았다. 6·25전쟁 기간 중 남한과 유엔은 25억장, 북한과 중국은 5억장 정도의 삐라를 뿌렸다고 한다. 전쟁 후에도 남북은 더 많은 삐라를 뿌렸고 삐라를 보고 월북 혹은 탈북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정부가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고 있는데도 북한이 되레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하고 있어 남북 간 삐라 갈등이 심각하다. 특히 북한이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사진을 담은 삐라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통일부가 유감을 표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삐라의 역사를 보면 삐라는 남북간 갈등의 선봉에 늘 서 있었다. 최근 삐라 갈등도 남북관계가 범상치 않음을 말해준 일례라 하겠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