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대구·경북
의료복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인류를 끊임없이 위협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차 대응은 단일국가 차원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연대가 방역 승리를 이끈다.  /경북매일DB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인류를 끊임없이 위협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차 대응은 단일국가 차원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연대가 방역 승리를 이끈다. /경북매일DB

거대한 질병에 갇혀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다. 국적도 국경도 감염병 앞에선 소용이 없다. 전쟁을 제외하고 이렇게 여러 국가에서 장기간 일상생활이 중단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화에도 제동이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교류와 이동이 유례없는 수준으로 제한됐지만, 이를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국제공조 시스템마저 부재한 상황이다. 자유무역 질서에서 이탈한 일부 국가는 보호주의를 택하거나 국수주의 길로 향하고 있다. 세계화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단절의 시간’이다.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코로나19 국면에 모범대응 사례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앞장서서 의료공조체계를 설계하고 국제사회의 리더가 될 것인가. 이 가운데 대구·경북은 지방의료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그동안 경쟁 관계를 중심으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온 지방의료계는 “더 늦기 전에 분열이 아닌 연대를 통한 의료공동체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다. 패러다임 교체에 앞서 시대정신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도내 활동 감염내과 전문의 1명뿐
김천·안동·포항의료원은 아예 없어
우수한 의료 인프라 갖추고도
수익창출 위한 출혈경쟁으로
2016년 추진했던 ‘메디컬 거리’ 실패
대구, 7개 의과대학서
연간 7천여 명 의료 인력 배출
상생 통한 ‘메디시티’ 브랜드화 ‘대조’
대경연 ‘상생협력 그랜드 플랜’
신약 개발 등 미래제약산업 발전 도모
한방·의료관광 특화모델 운영 추진

□ 경북, 의료인프라 열악 “연대만이 살길”

대구·경북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뜻밖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전 세계가 방역으로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지방연대가 힘을 발휘했다. 국가 차원의 대응을 넘어 지역사회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감염병 확산을 최소화하는 데 필수적임을 보여줬다. 위기 속에서 의료공동체의 힘을 확인했다.

경북 의료계는 지방의료의 특수성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역 의료공동체를 형성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본다. 언제든 다시 찾아올 신종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대구를 중심으로 의료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북만으로는 감염병 대응은 물론 의료체계 전반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의료인력만 해도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역에서 활동 중인 감염내과 전문의는 포항성모병원 감염내과 전문의 1명뿐이다. 도내 공공의료기관인 김천과 안동, 포항의료원에는 심지어 감염내과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 의료인프라를 개선할 만한 기회가 찾아와도 놓치기 일쑤다.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추진한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 참여희망기관 공모에 경북지역에서 지원한 의료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현실적으로 영남권 상급종합병원과 비교하면 인력이나 장비 등 규모적인 측면만 따져 봐도 크게 뒤처진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앞서 대구시는 지난 5월말 칠곡경북대병원이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 음압병실 확충 사업에 신규 선정돼 기존 음압병실 5개와 함께 병실 5개를 추가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같은 공모사업에 지원한 안동의료원은 의료여건상 기준에 미치지 못해 지원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의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결과다.

경북도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경북지역이 3개 권역으로 나뉘면서 환자 전원에 어려움을 겪는 등 우리지역 의료계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며 “지역 의료현실을 개선할만한 여러 방안이 그동안 꾸준히 논의됐지만, 대학병원 유치만 해도 시간이 한참 걸릴 것으로 예상돼 코로나 사태를 계기 삼아 대구를 중심으로 지방 의료인프라를 새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신종 감염병에 맞서기 위해라도 대구·경북 의료시스템이 통합돼야 한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감염내과 전문의들이 힘을 모아야 만약 위기가 다시 찾아오더라도 의료연대가 지역사회 확산을 막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말로만 “위기 공감”, 출혈경쟁에 혈안

예기치 못한 위기는 늘 찾아오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공동체 의지에 달렸다. 지역 의료계에서 “경북만으론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데는 단순히 의료인프라 부족 때문만도 아니다. 도내 소재한 의료기관들도 의료진이나 장비 등에 관해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출혈경쟁이다. 환자 유출을 막고 수도권 병원들과 경쟁하기 위해 유능한 의사와 첨단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점을 공감하면서도, 정작 그 목표가 상생이 아닌 생존이 되면서 출혈경쟁으로 번지는 탓이다.

‘메디컬 거리(medical Street)’ 조성만 봐도 그렇다. 포항시는 지난 2016년 ‘세계적 첨단 척추치료 기술 및 의료상품 브랜드 활성화 사업’을 주제로 경북도와 포항우리들병원, 구미강동병원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역선도 의료기술 육성사업 대상지로 최종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의료특화상품 개발과 함께 지역 우수병원과 연계해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메디컬 거리’ 를 조성하겠단 뜻을 밝혔지만, 인적·물적 의료자원 부족에 주변 의료기관의 참여 저조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결국 흐지부지됐다.

경북의사협회 관계자는 “병원 경쟁구도는 경북지역 의료계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며 “포항은 특히 실력 있는 의사와 우수한 장비를 갖춘 병원들이 많지만 수익 창출에 집중한 결과 지역 의료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동반성장하는데 함께 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공동체 기반을 탄탄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진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조건”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전문 진료분야 특화와 의료인력 교류, 의료기기 공동구매 등을 통해 연대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구·경북 의료공동체 ‘윈윈’전략

사실 의료계가 하나로 뭉치는 일은 드물다. 보건의료계는 융합이 쉽지 않은 분야로 협의기구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례적인 사례가 대구시에서 나왔다. 의과대학 등 교육기관만 6개, 의료인력으로 2만7천여명을 둔 대구시는 지난 2008년 ‘메디시티 대구’를 공식 선포하고 ‘대한민국 의료특별시’를 목표로 의료산업 발전에 앞장섰다.

메디시티 대구의 출발은 지역 의료공동체였다. 대구지역 7개 의과대학은 연간 7천여명의 의료인력을 배출한다. 이처럼 엄청난 수의 의료인력을 양성하더라도 개별 대학과 의료인프라로는 수도권 병원과 경쟁하기 힘든 구조다. 대구시는 이들을 묶어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지역 병원들이 모여 대형 규모를 이뤘고, 의료진들 역시 출혈경쟁이 아니라 상생을 위해 힘을 모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 의료도시 구축’을 위해 2010년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한 데 이어 통합의료센터를 구축하고 IT 융복합의료기기 산업을 육성하는데 힘썼다. 메디시티 대구로 이전한 의료관련 기업도 덩달아 늘었다. 대구지역에 소재한 의약품 기업은 2019년 기준 33개로 2010년(6개)보다 4.5배 증가했다. 의료기기 기업(174개)은 서울, 경기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국민보건의료실태 조사 결과에서 대구시의 ‘수술 및 전문질환에 대한 자체충족률’은 89.6%를 기록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시민들의 신뢰가 그만큼 두텁단 뜻이다. 대구시가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이른바 ‘환자 유출’이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대구·경북 의료공동체의 미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몇 가지 대안은 이미 추진 중이다. 대구경북연구원이 발표한 ‘대구경북 상생협력 그랜드플랜’에 따르면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와 포항가속기연구소가 혁신 인프라를 활용해 신약 개발 등 미래유망 제약산업 발전을 도모한다. 아울러 대구시와 경북도,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오는 2024년까지 지역의 우수한 한방 및 역사문화 자원과 연계된 의료관광 특화모델을 개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경북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근 국내 한의학계가 원격의료 도입 추진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한의학 분야에도 감염병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며 “대구·경북이 의료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방진료 부문에서 선점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훗날 역사가들은 한국 의료발전이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탄생했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위기는 변화의 신호탄이다. 지금이 대구·경북 통합의료시스템 구축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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